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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소실 낙산사 복원, 12일 회향식 봉행…김홍도 '낙산사도' 따라 가람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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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소실 낙산사 복원, 12일 회향식 봉행…김홍도 '낙산사도' 따라 가람 배치

입력
2009.10.07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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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가 지나가도 관광객들이 인상을 안 써. 돈을 안 받으니까…."

천년 관음도량 낙산사의 원통보전 금단청은 손때는커녕 먼지 한 톨 없이 화사했고, 설선당 문설주도 칠조차 덜 마른 듯 나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절집 구석구석을 안내하던 주지 정념(47) 스님은 그 화사함이 무안한 듯 저렇게 농을 하다가도, 일순 진지해지며 "내가 주지로 있는 동안만이라도 입장료는 안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간 신도들이며 관광객들이 보여준 정성에 대한 작은 보은의 의미라 했다.

2005년 4월 5일 화재로 절집의 80%가 소실되는 참화를 입은 강원 양양군의 낙산사가 복원 공사가 본격화한 지 만 5년여 만에 제 모습을 거의 되찾았다. 제 모습이라 함은 화재 전의 모습이 아니라 단원 김홍도의 그림 '낙산사도'(1778년)에 담긴 200여 년 전 가람 배치와 절집 형태를 일컫는다.

낙산사측은 복원에 앞서 문화재전문가와 고건축전문가 등으로 낙산사복원자문위원회를 구성, 2년 가량 문헌 및 발굴조사를 벌였다. 신라 고승 의상이 창건(671년)한 이래 낙산사는 몽고 병란과 왜란,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8차례나 사실상 전소됐고, 그 때마다 사찰이 중창됐다. 정념 스님은 "중창 때마다 복토했던 게 시루떡처럼 층이 져 있더라"며 "단원의 그림에 담긴 조선 초기 낙산사의 유구를 따라 도량을 앉혔다"고 말했다.

그렇게 원통보전과 범종각, 홍예문 등 소실된 전각이 단아하게 복원됐고, 5년 전에는 없던 설선당, 빈일루 등이 고증에 의해 새로 섰다. 전각마다 방수총과 수막시설 등 화재 차단시설을 갖췄다. 총 16개 전각이 건립된 이번 복원 불사에는 정부가 80여억원, 조계종이 70여억원을 들였고, 산림 복구비용은 양양군이 댔다.

낙산사는 12일 오전 11시 원통보전 앞에서 제2차 복원불사 회향식을 봉행한다. 1차 복원불사 회향 법회는 2007년 11월에 있었다.

원통보전 관음보살을 등지고 서서 바라보면 오른쪽으로 아득히 설악산 대청봉과 백두대간의 연봉이 줄달음치고, 왼편 담장 너머로는 푸른 용이 숨어 산다는 동해 물결이 쉼없이 출렁인다. 시인 고은은 <절을 찾아서> 라는 책에서 "(낙산사는) '동해 낙산사!'라고 해야 한다. 거기에는 반드시 감탄사가 붙어 있지 않으면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지 않는다"고 적었다.

겸재 정선의 '낙산사'에도 단원의 '낙산사도'에도 화폭의 70%는 바다이다. 해서 낙산사는 관음도량이면서 국토의 보석 같은 공간이다. 설악산을 찾는 관광객이 한 해 220만명, 낙산사 관광객은 15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낙산사측은 설선당, 정취전, 응향각 등 전각들을 다실과 지대방(휴게실) 등 불자들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활용키로 했다.

◆ 주지 정념 스님 "지역주민·이웃종교 정성에 보은해야죠"

-복원하면서 특히 신경 쓴 점은.

"화재 겪고 보니 바람에도 길이 있다는 걸 알겠습디다. 예전 도량은 바람 길들을 전각들이 막아 섰던 탓에 화재가 컸던 것 같아요. 복원된 낙산사는 바람과 숲과 사람이 어우러진 도량입니다."

- 힘들었던 점은.

"이같은 경우에 돈이 부족한 것도 힘들지만 더 힘든 건 지역 주민과의 화합입니다. 이번 복원불사에는 주민들과의 잡음이 전혀 없었어요. 저를 믿고 절을 믿어준 게 감사할 따름이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천주교 춘천교구, 원불교 등 이웃종교에서도 십시일반 성금을 전해주셨어요. 그 정성들이 이 큰 불사를 이룬 셈입니다."

-그래서 입장료 안 받으시는 건가.

"내가 살아보니까 많든 적든 공짜가 좋습디다.(웃음) 잘 안보였겠지만, 경내에 커피 무료 자판기도 10대가 있어요." 그는 2003년 봉정암 주지 시절 1,000원씩 받던 자판기를 무료로 바꾸기도 했다고 한다. "100원짜리 동전을 수북하게 쌓아둡니다. 관광객들은 동전 하나 가져가면서 고마워하고, 차 한 잔 마시면서 또 한 번 고마워하죠."

-어린이집, 도서관, 공부방도 지으셨다던데.

"절이 불탄 게 영혼이 허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정신이죠. 절 살림이 어려운 지경이긴 하지만, 빚을 좀 내서 시설을 건립했습니다. 앞으로 20년 뒤면 농촌은 군인들이 지킬 것 같아요. 사람이 없습니다. 지역 사회를 살리는 데 절이 최대한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양양=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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