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은 투병과정에서 신체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을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피폐해진다. 환자 가족들은 어떨까? 암환자 가족의 고통을 이야기하다 보면 "환자가 더 힘들지, 가족이 힘들 것이 뭐 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연히 환자가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족이 더 고통스러울 때도 많다. 간병을 위해 가족 중 누군가 직장을 쉬거나 그만 두기도 한다. 환자가 거동이 힘들 때는 병원에 환자를 데리고 가야 하며 힘든 일을 대신 떠맡아야 한다. 심지어 서울 며느리가 시골 시부모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극진히 간호하기도 한다.
환자 간병은 단순히 간병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필자가 만나는 수많은 환자가족들을 들여다보면,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생기거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해 가슴 아픈 경우도 있다. 치료비 부담으로 저축을 대부분 깨야 하거나 가족의 수입원을 상실하는 등 경제적 위기를 겪는 경우도 흔하다. 그 때문에 더 싼 집으로 이사하거나 다른 가족의 중요한 치료를 미루는가 하면 자녀의 교육 계획을 변경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쟁이 길어지면 탈영병이 생기듯이 만성 질병과의 전쟁을 오래 겪다가 이혼으로 가정이 파괴되기도 한다.
환자 가족의 신체적, 사회적, 경제적 부담은 정서적 장애로 이어진다. 암환자 가족 3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족의 3 명중 2명은 우울 증상이 있었다. 3 분의 1은 매우 심각한 우울증이 있어 치료가 필요했다. 서구의 자료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 암환자 가족이 더 심각했다. 환자를 돌보다 보면 정작 가족 자신의 건강에 소홀해져 나중에 큰 병을 앓기도 하고 때로는 환자보다 가족이 더 우울하다. 그렇다고 하소연할 데도 없다.
치료가 끝나도 재발 걱정과 합병증으로 인한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 병든 부모와 자식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자식의 걱정은 두 배가 된다. 과거와 달리 핵가족화에 따라 환자를 돌볼 가족이 부족하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가족을 대신해 간병인을 고용할 경우 이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상당하다.
가족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최근 개인이나 사회나 자원봉사에 관심이 많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봉사활동에 열성을 다한다. 정부가 자원봉사자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해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가족을 위해 병원에서나 집에서 환자를 간병하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자주 쓰는 말처럼 우리나라는 3.6명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고 한다. 여유 있을 때 서로 가족을 돌보아 주는 환자 봉사를 통해 우리 고유의 '품앗이'전통을 살려 가면 어떨까?
맹자는 "자기 부모를 부모로 섬기는 그 마음씨를 남의 부모한테까지 확대해서 섬기고,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씨를 미루어 남의 자식도 제 자식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나. 가족에게 환자를 간호할 수 있도록 무급 휴가를 보장해 주는 '가족병가'제도를 을 실시하는 나라들도 있다. 취약계층의 환자를 돌보아 주는 공적 간병인 제도도 고려해 볼만하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병원과 정부가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 가족의 건강도 챙겨주는 사회적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윤영호 국립암센터 책임연구원 · 가정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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