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이었다. 지난달 22일. 삼성은 SK에 1-6으로 패하며 1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목표가 시야에서 멀어졌다. 그날 밤. 한대화 수석코치는 선동열 감독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감독님, 저 다른 팀으로 가도 되겠습니까."
■ 14년 지기, 그리고 이별
해태(현 KIA)에서 8년, 삼성에서 6년. 14년의 세월이었다. 한대화(49) 한화 신임감독은 그렇게 항상 선 감독의 옆을 지켰다. 선 감독이 마운드에서 상대 타자들을 호령하는 동안 한 감독은 찬스를 놓치지 않고 타점을 만들어냈다. 동생뻘인 선 감독을 항상 '감독님'으로 깍듯하게 보좌하며 삼성의 2연패를 일궈냈다.
선 감독이 스스로 자신의 '분신'이라고 하는 한대화 수석코치. '한 수석'은 그렇게 지난달 말 한화의 신임감독으로 선 감독의 곁을 떠났다. 이미 예상됐던 일이었다. 6년 동안 삼성 코치를 지내며 두 차례 우승을 일궈낸 한 신임감독은 이미 '준비된 감독'으로 각 팀의 영입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한 신임감독은 한화와 계약서에 사인을 마친 30일 "이미 예전부터 선 감독이 '좋은 자리 나면 떠나시라'고 했는데 선 감독의 말대로 됐다. 이제 같은 입장에서 경쟁을 해야 하니 마음이 묘하다"라고 털어놨다.
■ 험난한 앞길, 그리고 자신감
한 살 터울의 아내 윤향수(48)씨는 마냥 기뻐할 수 없다. 남편이 뒤늦게 비로소 한 구단의 사령탑을 맡았지만 마음껏 기뻐하기에는 야구 감독이라는 직업의 애환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한 감독은 "동국대 감독 시절에 고생하던 모습을 아내가 너무 많이 봤다. 기쁜 마음 반, 걱정하는 마음 반인 것 같더라"라고 했다.
상대팀의 입장에서 줄곧 한화를 지켜봐 왔던 그는 한화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 감독은 "타선은 기본적인 파워를 갖췄지만 선발이 강한 특정팀에 약하고, 투수진은 올해 경험을 쌓았다지만 아직 어리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비와 주루 불안은 가장 큰 약점이다. 보강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쉽지 만은 않을 것"이라고 그를 흘겨보는 이들을 향해, 한 감독은 자신이 왜 '준비된 감독'인지 결과로 증명해 보이겠다는 굳은 다짐을 거듭하고 있다.
■ 대전의 부활을 꿈꾸는 대전의 아들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결승 3점홈런을 쳐내며 국민 영웅이 됐던 동국대 4년생 한대화. 그는 언제나 '대전의 아들'이었다. 한밭중-대전고를 졸업한 대전 토박이 한대화에게 보내는 대전 시민들의 성원은 뜨거웠다. 연고지역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1983년 신인 1차지명에서 당시 대전을 연고지로 쓰던 OB(현 두산)에 '당연히'전체 1순위로 지명됐다.
한 감독은 "선수라면 누구든지 고향에서 뛰고 싶은 게 당연지사 아니겠나. 그러나 선수 마음대로 되는 건 없더라"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 감독과 고향 대전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었다. 84년 OB가 연고지를 대전에서 서울로 옮기면서 한 감독은 25년 동안 타향살이의 운명을 짊어져야 했다.
한국 나이로 쉰. 인생의 절반을 타향에서 떠돈 한 감독은 '지천명'의 나이에 정든 고향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그는 이제 힘없이 추락한 독수리의 화려한 비상을 꿈꾸고 있다. 한화의 부활도, 대전 야구팬들의 희망도, '대전의 아들' 한대화의 두 손에 달려있다.
허재원 기자 hooa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