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실시된 아일랜드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의 정치적 통합을 강화하는 리스본 조약이 통과됨으로써 이 조약 발효의 최대 걸림돌이 제거됐다.
리스본 조약이 발효되면 EU 대통령이 탄생하고, 국제기구 가입이 가능해 지는 등 EU의 결속력과 영향력과 한층 강화된다. 의사결정구조 변경으로 일부 회원국이 반대해도 정책추진을 강제할 수 있는 집행력과 효율성도 제고된다.
그러나 27개 EU 회원국 중 상대적으로 약소한 회원국들은 EU가 독일과 프랑스 등 강대국의 입김에 좌우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내년 1월 발효 목표, 체코 저항이 남은 변수
EU는 내년 1월 리스본 조약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일랜드에서의 국민투표 통과로 이제 사실상 체코만이 남게 됐다. 비준서명을 미뤘던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이 "아일랜드 국민투표에서 통과되면, 비준안에 서명하겠다"고 밝힌 상태이기 때문이다.
체코의 경우, 유럽통합 회의론자인 바츨라프 클라우스 대통령이 비준서명을 미루고 있다. 의회에서 비준동의안이 승인됐지만 지난달 29일 17명의 상원의원이 리스본조약에 대해 위헌심사를 청구,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헌재 판결까지는 약 6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데 EU회원국들의 체코에 대한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어, 클라우스가 판결 이전에도 서명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아지고 있다.
마지막 회원국의 비준서가 기탁된 달의 다음 달 첫째 날에 발효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에 12월까지만 클라우스 대통령이 서명하면 1월1일 발효가 가능하다.
EU의 중앙집권 강화와 한ㆍEU FTA에의 영향은
리스본 조약 체제에서는 EU의 중앙집권화가 한층 강화된다. 27개 회원국 정상이 6개월마다 순회의장직을 맡는 대신 임기직 대통령에 해당하는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생기고, 정책결정에 만장일치제 대신 이중다수결제(15개국 이상, 회원국 인구65% 이상)을 도입해 집행력을 확보함으로써 일부 회원국이 반대하더라도 EU가 새로운 정책을 강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회원국마다 1명씩 배정됐던 집행위원을 모두 18명으로 축소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EU에 '법적 인격체'의 지위를 부여해 유엔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에 가입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았다.
EU의 중앙집권 강화는 양측 통상장관 사이의 가서명을 앞두고 있는 한ㆍ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전망이다.
협상 창구가 명확해졌다는 점은 유리해진 대목으로 꼽힌다. 그 동안 어느 범위까지가 유럽이사회 권한이고 어디까지가 유럽의회 또는 개별 회원국 권한인지 모호했던 점이 있었으나 리스본 조약체제에서는 명확히 정리되기 때문이다.
다만 한ㆍEU FTA 협상 결과에 반발했던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등이 리스본 체제에서 FTA 승인권을 갖고 있는 유럽의회에 대한 로비를 강화할 경우, 여러 복합적 요소 때문에 섣불리 유불리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 리스본 조약이란
리스본 조약은 유럽연합(EU)의 기능을 강화하는 '헌법조약'이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부결된 뒤 수정안으로 제시된 협약으로서, EU의 '미니 헌법'이라고 불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주도로 추진돼 2007년 12월 13일 27개 회원국 정상들이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수도원에 모여 조약에 공식 서명했다.
'헌법조약'중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던 EU에 초국가적 상징을 부여한 대목은 삭제됐지만, 헌법조약이 추구했던 내용의 대부분은 리스본 조약에 그대로 반영됐다.
주요 뼈대는 ▦EU대통령(상임의장)ㆍ외교정책대표직 신설 ▦만장일치제 대신 이중다수결제(회원국 인구 65%, 15개 회원국 이상 찬성제) 도입 ▦EU에 법인(legal person)지위를 부여해 국제기구 가입 토대마련 등이다. 국제무대에서 개별 국가의 목소리를 줄이는 대신 EU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를 담았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