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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소설집 '안녕, 엘레나' 낸 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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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소설집 '안녕, 엘레나' 낸 김인숙

입력
2009.10.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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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웃거나 우는 이유는 행복이라든가, 슬픔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허전함 때문이었다. 자신은 빈 항아리거나, 아니면 구멍이 숭숭난 대바구니 같았다. 생이 아가리로 들어왔다가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남은 것은 텅 빈 것뿐이다. 텅 빈 것조차도 남아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산너머 남촌에는'에서)

해거름 무렵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있거나, 지저분하고 소란스러운 막차의 연결통로에 피곤한 몸을 기대고 서 있을 때 이름 모를 공허감이 올라와 목이 메이는 수가 있다. 그 같은 공허감에 뒷목을 잡아 채인 존재들에게 선택은 두 가지다. 응시하거나 망각하거나.

김인숙(46)씨의 여섯 번째 소설집 <안녕, 엘레나> (창비 발행)에 서식하는 인물들은 금방이라도 찬 바람이 쌩 하고 지나갈 것 같이 뻥 뚫린 생의 구멍을 바라보며 의미 찾기에 몰두한다. 공허감의 근원은 대개 존재의 터전이 되지 못하는 가족이다.

2005~2009년 씌어진 단편 일곱 편을 묶은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편인 '숨-악몽'의 화자는 아버지의 존재에 가위눌려 있다. 건장한 몸을 갖고 있지만 아버지는 젊은 시절 징집을 거부해 8년을 도망 다닌 병역 기피자였고, 사회는커녕 제 아내와 제 자식조차 돌보지 않는 불성실한 가장이었다. 군대에 끌려갔다 온 뒤 비로소 직장을 얻긴 하지만 그는 생활보다는 밤낚시에 빠져있다.

쌍둥이 아들을 제 형(화자의 큰 아버지)에게 입양시킨 후 미국으로 이민 보낸 아버지. 화자는 아버지가 쌍둥이 형을, 어머니를, 자신의 여동생을 죽였을 것이라는 악몽에 시달린다.

"세상에 어느 가족이 이와 같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의 어떤 '우리'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라고 절규하는 화자는 불성실하고 무기력한 아버지가 자신의 공허하고 불안한 삶의 화근이라고 여기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인내는 결국 파열음을 내고 만다.

아버지를 따라 낚시에 나섰던 어머니가 사고로 목숨을 잃고 소설은 기묘한 반전과 결합된 살부 행위라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진다.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프로이트적 모티프는 다른 작품에서도 변주된다. 외항선원인 아버지와 이혼한 뒤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젊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표제작과, 자식만 주렁주렁 낳게 하고 밖으로만 떠돈 남편 때문에 평생 속앓이를 한 여성의 삶을 다룬 '산너머 남촌에는' 역시 '불성실한 가장'이라는 생의 그늘을 공유하고 있다.

마땅히 누려야 할 아버지와 남편의 애정이 결핍된 주인공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방식은 외국에 자신의 여동생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거나(표제작), 그냥 웃거나 울거나 하릴없이 숫자를 세는('산너머 남촌에는') 행위뿐이다.

1983년 대학생의 신분으로 등단한 뒤 '민중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사회변혁'이라는 거창한 주제로 출발, '여성적 정체성에 기반한 일상 속의 존재양식 탐구'라는 주제로 자신의 소설적 영토를 넓혀온 김인숙씨. 날카로운 눈매로 인간내면을 탐사해온 작가적 역량은 이제 좀더 깊은 시선으로 인생이 품고 있는 은밀한 슬픔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파헤치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변한다.

김씨는 "시간이 흐르면서 좋은 의미로 부드러워졌고, 다른 의미로는 한발짝 뒤로 물러서 인생을 바라보게 된 것 같다"며 "이전에 썼던 리얼리즘 소설과 달리 시선의 방향을 좀 바꿔보고 유연해지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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