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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동포3세 청년 연수생들, 추석 맞아 영구귀국 1세대 복지관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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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동포3세 청년 연수생들, 추석 맞아 영구귀국 1세대 복지관 찾아

입력
2009.10.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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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인천 연수구 연수동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 영구 귀국한 사할린동포 1세대 80여명이 모여 사는 이 곳이 이른 아침부터 손님맞이 준비로 분주했다. 입구까지 나와 손님들을 기다리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10명의 젊은이들이 들어서자 반가운 표정으로 손부터 잡았다.

"아뜨 꾸다 프리예할리(어디서 왔어요)?" "유즈노 사할린스크." "우야꼬, 내랑 같은 동네에서 왔네."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섞은 떠들썩한 대화가 한동안 이어졌다.

다리가 불편한데도 지팡이를 짚고 입구까지 나온 조연금(83) 할머니는 "사할린에 있는 내 손자를 보는 것 같다.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올 생각을 했는지 대견하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젊은 방문객들은 한국산업인력공단 국제HRD 센터 주관 '연해주-사할린 재외동포청년 IT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러시아동포 3세들. 지난 7월 입국해 4개월 과정으로 교육을 받고 있는 이들은 추석을 앞두고 고향 어르신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사할린의 가장 큰 도시인 유즈노 사할린스키에서 왔다는 까짜(22ㆍ여)씨는 "우리 가족을 알고 있는 할머니도 계시다고 해서 꼭 한 번 오고 싶었다"며 "너무 반갑게 맞아주셔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끌벅적한 첫 인사를 나눈 뒤 1층 식당으로 향했다. 할머니들과 연수생들이 함께 러시아 전통 음식인 삘미니(만두)를 만들기 위해서다. 분홍색 앞치마를 걸치고 서툰 솜씨로 삘미디를 빚기 시작한 알렉산드로(25)씨는 옆자리에 앉은 이정희(80)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즈드라브스트부이쩨(안녕하세요)." 아직은 어색한 듯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서먹함도 잠시, 어느 새 두 사람은 할머니와 친손자처럼 다정한 모습으로 사할린 고향 이야기며, 한국에는 언제 무엇을 하러 왔는지 등 서로 궁금한 것들을 묻고 답하느라 입이 쉴 틈이 없었다.

1939년 온 가족이 사할린으로 이주했었다는 이씨는 "사할린에 알렉산드로 같은 장성한 손자들도 있지만 고향이 너무 그리워서 99년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귀국해 벌써 10번째 추석을 맞는다"며 "추석이면 사할린의 가족 생각이 더 나는데 손자 같은 애들을 보니 흥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로도 "우리 할머니를 보는 것 같아 친숙하다"며 "외롭고 적적하신 할머니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돼 드렸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고향 손주들의 방문에 신이 났는지 강춘자(67) 할머니는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할머니들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만두 빚기를 가장 먼저 끝낸 조연금 할머니는 연수생들을 '끄레젠떼'(국화)란 이름이 붙은 2층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4명의 할머니들이 함께 생활하는 방에 연수생들이 들어서자 조씨는 "내가 줄 게 사탕하고 과일밖에 없다"며 침대 한 켠에 꼭꼭 감춰뒀던 주전부리들을 내놓았다.

그는 2년 전 영구 귀국해 안산의 임대아파트에서 살다 건강이 악화해 올 2월 이곳에 왔다. 복지회관에는 사할린동포들 가운데서도 몸이 불편한 독거노인들만 입주할 수 있다.

조씨는 "사할린에서도 송편 같은 한국 음식을 준비해 추석을 빼놓지 않고 챙겼다"며 "이런 날이면 같이 귀국하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생각이 더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점심식사는 할머니들과 연수생들이 함께 빚은 삘미니와 가룹찌 등 러시아 음식으로 한 상 가득 차려졌다. 할머니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식당으로 모였다. "프리야드노바 아베찌따(맛있게 드세요)." 세르게이(19)씨가 짧은 인사말을 마치자 연수생들은 어르신 한 분 한 분에게 음식을 챙겨 드렸다.

손주 같은 연수생들과 함께 모처럼 사할린에서 먹던 러시아 음식을 맛보며 명절 분위기를 한껏 맛본 할아버지, 할머니들 얼굴에는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최고령자인 김옥동(94) 할아버지도 "손주 같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해 꼭 명절날 잔칫집 분위기 같다"며 좋아했다.

연수생들은 오후에 다른 일정이 예정돼 있어 점심식사 후 고향 어르신들과 아쉬운 작별을 해야했다. 알렉산드로씨는 "교육 받으러 한국에 왔지만 더 깊은 정을 추억 속에 간직할 수 있게 됐다"며 "여기서 배운 IT 기술뿐 아니라 할머니 나라에서 느낀 정까지도 사할린에 가면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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