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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말씀들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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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말씀들의 수난

입력
2009.10.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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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외곽의 농촌마을에 들었다가 괴이한 집을 본다. 먼발치에서는 판자로 얽은 창고 같으나 가까이에서 보니 사람이 들어 사는 농가다. 온 집을 둘러 벽과 지붕에 판자를 덧댄 것은 무슨 바람막이나 물막이, 방풍 방수가 목적이 아니다. 그 판자들은 밖에 내건 일종의 대자보(大字報)다. 판자에는 누군가를 고발하고 저주하고 겁박하고 호소하는 격문과 구호로 도배되어 있다. 땅을 빼앗긴 억울한 사연이다.

벌거벗은 언어의 지옥

별스럽다는 느낌은 둘째 치고 괴기스럽고 소름이 끼친다. 그런 집을 이고 사는 주인의 내면 또한 얼마나 황폐할까. 마음이 거기에 이르니 언어의 지옥이 있다면 그 집 풍경이 아닐까 싶다. 혀를 뽑아 쟁기질하는 지옥도의 한 장면보다 더 적나라하다.

괴이한 집을 보고 와서는 이런 사람을 상상해본다. 세상의 좋은 말씀을 금과옥조로 모시며 사는 가장이 있다. 그의 아파트에는 격언 같은 글귀들을 옮긴 종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아이들 책상에도 거실 벽에도 화장실 거울에도 나붙어 있다. 글귀들은 조악하나마 정성 들여 쓴 붓글씨이다. 유비무환 임전무퇴, 일생의 계획은 젊은 시절에 달려 있고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으며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달려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동서고금 성현들이 남긴 격언은 물론 성경 구절도 있고 탈무드의 말씀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거리에서 멋진 글귀를 만나면 친히 주워와 삶의 모토로 삼는다. 공중화장실 소변기 앞에서 우연히 '가까이, 더 가까이!'라는 글귀를 보고는 가족애의 모토로 삼았다. 한때는 공원 한 켠의 돌에 새겨진 '바르게 살자'는 말씀을 주워다 가훈으로 삼은 적이 있다. 아이들이 좀 더 자라자 그는 가훈을 바꿨다. '길이 아니니 가지 말자'. 공원 잔디밭 가에 세워진 팻말을 보고 얻은 가훈이다. 마치 그와 그의 가족은 말씀의 가르침대로 세상을 살고자 부단히 다짐하고 사는 사람들 같다. 그는 말씀에 굶주린 사람이고, 말씀의 수집가이다.

그가 말씀의 수집가가 된 데에는 오랜 이력이 있다. 어려서는 '표어'의 세계에서 살았다. 때려잡고 무찌르고, 신고하자는 표어를 어디에서나 보고 자랐다. 그 스스로 표어를 짓는 숙제를 하느라 시달리기도 했다. 좀 더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표어를 짓느라 머리를 싸맨 끝에 '너는 자수하면 산다'는 표어를 지어 상을 받았다.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받았을 때에는 스스로 지었다. 집에 가훈이 있을 리 없었고 술 취한 아버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을회관에 붙은 글귀를 옮겨다가 제출했다. '자력갱생'

좋은 말씀 받드는 세상을

그런 그에게 집으로 주워 나르고 싶은 좋은 말씀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마치 그는 말씀에 들린 사람처럼 가게 간판 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곧 망할 집'이라는 식당 간판을 보고는 그 아이디어에 무릎을 쳤다. 그러다가 제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강당을 보고는 거의 감탄하는 마음이 되어 우러러 보았다. '글로벌 인재로 육성하겠습니다'. 그는 이제 가훈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전성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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