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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3> '춘향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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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의 문향] <3> '춘향전'의 힘

입력
2009.10.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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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이 지나서도 아직도 읽히는 책이라면 고전'이라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가 읽고, 아버지가 읽고 또 손자가 읽는 책. 그러기에 책을 쓰는 작가나 저자라면 누구나 이런 책을 쓰고자 할 터이다.

근대의 천재라는 육당 최남선도 세상을 마치며 역사에 남을 책을 남기지 못하고 죽는 것을 슬퍼했다고 하는데, 무애 양주동은 육당이 후대에 남을 책으로 외솔 최현배의 <우리말본> 과 무애 자신의 <고가연구> 를 500년 남을 책이라고 했다는 일화를 자랑으로 전했다.

우리 문학의 고전이라면 가깝게는 <춘향전> 이나 박지원의 <열하일기> 나 만해(卍海)의 <님의 침묵> 같은 책을 꼽을 수도 있을 터이다.

특히 한국은 시집(詩集)이 팔리는 드문 나라라 하고 시를 좋아하는 전통이 대단해서 <두시(杜詩)> 의 경우는 조선 전기의 이름 있는 문인을 모두 동원하여 당(唐) 나라 두보의 시를 몽땅 언해(諺解)하고, 150년에 걸쳐 중간(重刊)하는 역사를 남겼다.

그리고 이어 편찬된 <동문선(東文選)> 은 자국 역대의 시문을 133권의 본편과 <속집> 23권으로 펴내서 <왕조실록> 과 함께 사고(史庫)에 갈무리하고, 중국과 일본에 보내어 문학의 나라임을 자랑했다.

<춘향전> 은 판소리나 소설로서는 물론, 연극이나 영화나 오페라 등 여러 양식으로 넘나들며 재창작되고, 존망의 갈림길에 선 극단이나 영화사는 <춘향전> 으로 재기를 모색한다는 말까지 낳았다. 소설을 영화화한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은 미국 언론인 셀리그 헤리슨이 2001년 4월 <춘향뎐의 힘> 이라는 신문 기고로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여기서 '힘'이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한국문화의 힘이란 뜻일 터이지만, 지식을 주는 책들과 달리 문학은 독자로 하여금 그 첫발부터 그 삶을 변화시키고 향상시키는 힘을 지닌다.

그러나 문학은 향유하는 사람에게 힘이다. 내 친구 정대구 시인은 시를 배우겠다고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시집을 골라 300번 읽고 100번 써 오도록 시킨다고 한다. 이런 열성이라야 시를 배울 수 있다는 가르침일 터이다.

정 시인 뿐 아니고, 그의 돌아가신 어머니 밀양 박씨(1893~1990)는 평범한 시골 아낙이었지만, 95세 때까지 <춘향전> 은 물론, <유충렬전> 이나 <삼국지> 등 10여편의 고전 소설을 줄줄 외셨다. 이런 어머니에게서 시인 아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나는 시 한편 못 쓰는 국어 선생이면서도, 입학 면접 때에는 언제나 한 가지만 묻는다.

"자네는 시를 몇 편이나 외나?"

그러나 시를 외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향유하는 일이다. 한국에서 강의를 마치고 돌아간 일본의 한국문학자 사에구사(三枝壽勝) 교수의 편지에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며 어려움을 느낄 때, 자기 나라 책들 가운데서 찾아 읽는 책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말이 있었다.

읽을 책이 없을 이치가 없다. 시험을 위한 교육을 집어 치우고, 고전에서 삶을 배우는 교육을 되살리는 날, 우리 문화의 힘이 되살아 날 터이다.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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