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생존은 오늘날 손자손녀들에게 드문 일이 아니다. 조부모 역할을 하는 기간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60세에 첫 손주를 보는 경우 기대 여명(餘命)으로 따져 남성은 평균 20년 이상, 여성은 25년 이상 조부모로 살게 된다. 10대에 출산한 딸이 다시 10대에 임신하여 30대 중반에 할머니가 된 미국 여배우 우피 골드버그의 경우 50년 이상을 조부모로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대리부모 역할 갈수록 늘어
얼마 전부터 미국에서는 '조부모 양육'이 활발히 연구되고, 이를 지원하는 다양한 책 잡지 인터넷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조부모 양육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손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가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미국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5세 미만 취업모 자녀의 30%가 부모가 일하는 동안 조부모의 정기적 돌봄을 받고 있다. 600만 명이 넘는 조부모 집에 18세 미만의 손자녀가 동거하고 있으며, 250만 명의 조부모는 동거하는 손자녀의 의식주와 양육을 책임지고 있다.
손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의 증가는 자녀의 사망, 10대 임신, 약물중독, 아동학대나 방임, 수감 등에도 기인하지만 가장 크게는 자녀의 취업과 이혼 증가와 맞물려 있다. 이런 사회 변화에 따라 과거 부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지던 조부모 역할이 손자녀 양육에 보다 큰 책임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리부모 역할로 확대되고 있다.
낮 시간에 정기적으로 손자녀를 돌보지 않는 조부모도 손자녀의 방과후, 주말, 그리고 방학 동안의 교통편 제공, 숙제 지도, 여행, 박물관이나 미술관 동행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멀리 사는 조부모는 전화, 편지나 카드, 이메일, 선물 등을 통해 원거리 사랑을 전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조부모가 손자녀들과 애착관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런 추세 속에 조부모 양육에 대한 기본서, 좋은 조부모 되기 가이드, 조부모의 원거리 사랑법 등 조부모 역할에 도움이 되는 책이 대거 출간되고 있다. 조부모가 손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연령별 활동, 손자녀에게 읽어 줄 수 있는 책이나 영화 정보 등을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들도 있다. 조부모 양육 교육을 지원하고 자녀의 이혼 등으로 위협받을 수 있는 조부모-손자녀 관계의 지속을 옹호하는 전국적 비영리 조부모 권리단체도 조직되었다.
3세 이하 유아를 위한 적절한 보육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맞벌이와 이혼 여성이 증가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자녀와의 동거 여부와 관계없이 손자녀를 양육하는 조부모가 늘고 있다. 60대 초반의 손윗동서 부부도 맞벌이하는 딸의 자녀를 태어나서부터 1년째 돌보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데리고 있다가 금요일 저녁 딸에게 보낸다.
양육 돕는 연구와 관심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조부모 양육이 부모 양육에 부수적인 것으로만 생각해서일까, 아직 사회적으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손자녀 양육을 전담하는 조부모들이 많이 있고, 양육을 분담하거나 원거리 양육을 지원하는 조부모는 더 많다. 자녀 잘 키우라고 부모 양육 관련서적이 서점에 그렇게 즐비하고 부모 양육 연구가 그렇게 활발하다면, 이제는 조부모 양육에도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조부모 양육의 경험담, 손자녀 양육과 얽힌 부모와의 갈등해결 방법, 좋은 조부모 되기 길잡이 등의 책이 나오고 조부모 양육을 지원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개설된다면 조부모들도 손자녀 양육에 보다 큰 자긍심을 가지고 훌륭한 조부모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지 않을까? 그들의 손자녀 양육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손자녀 양육을 보다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조부모를 위한 쇼를 시작할 때다.
홍순혜 서울여대 사회복지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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