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육군 최고령 전차 'M48A3K'…50여년 세월에도 장병들 보살핌에 아직 기동훈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육군 최고령 전차 'M48A3K'…50여년 세월에도 장병들 보살핌에 아직 기동훈련

입력
2009.10.05 00:10
0 0

"나는 대한민국 육군 전차다. 이름은 'M48A3K'. 어렵다고? 'M48'은 1948년에 개발된 모델(미국)이란 뜻이고, 뒤에 붙는 것은 여러 개량형 중 하나를 뜻해. 전차 하면 K1(일명 88전차)이나, K1A1, 아니면 최신예 '흑표'를 떠올리겠지만, 70~80년대 이 땅에선 우리 M48 계열 형제들이 주인공이었지. 나이? 쉰 살쯤 됐을까? 사실 이쯤 되면 전시관이나 시민공원 같은 데 편히 자리잡고 관람객이나 상대하고 싶어지지. 하지만 어쩌겠어. 조금만 움직여도 여기저기 쑤시는 노구(老軀) 신세라도 아직은 내가 필요하다니 최전방을 지켜야지. 그렇다고 너무 안쓰럽게 볼 건 없어. 정성껏 돌봐주는 장병들 덕분에 북한군 탱크 하나쯤 가뿐히 처리할 수 있으니까."

강원 양구군 양구읍 도사리의 한 야산 초입. 육군 제21보병사단의 전차중대가 자리했다. 북쪽으로 12㎞만 가면 철책이 나오는 최전방 지역이다. 이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펀치볼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피의 능선 전투 등 치열했던 전투가 다수 벌어졌던 격전지였다.

부대에 들어서자 중대장 김수진(38) 소령이 반갑게 맞는다. "육군 최초의 전차부대에 잘 오셨습니다." 51년 10월 미군에서 받은 M36 전차 6대로 창설됐다. 부대 역사도 오래됐지만, 전차(M48A3K) 역시 우리 군이 실전 운용 중인 최고(最古)의 전차다. 미군의 M48 계열 전차는 52년 양산이 시작된 이후 베트남전, 중동전 등에서 활약했다.

우리나라에는 60~70년대 M48A1, M48A2C 등이 도입됐고, 군은 M48A1 전차를 지금의 M48A3K(77년) 및 M48A5K(78년)로 개량해 배치했다. 김 소령은 "M48A3K 전차들이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에 생산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현재 도서지역 해병부대와 동부전선 보병사단 등에 100여대가 배치돼 있다.

"그나마 M47 운용할 때보다는 나아요." 중대 정비반장인 조정훈(45) 준위의 설명이다. 2004년까지 운용한 M47 전차는 기름을 가득(870리터) 채우고도 100㎞ 움직이는 게 고작이어서 훈련 때마다 기름 보급 문제가 골치였다. "M48이 들어올 때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M48도 낡기는 매한가지. 훈련 잦은 전방에서 노후 전차를 운용하기란 간단치 않다. 조향 장치(핸들)만 해도 그렇다. 왕복 2차로의 지방도를 주행할 때 맞은 편에서 차량이라도 오면 장병들은 자신도 모르게 바짝 긴장한다.

언제 '쏠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 소령은 "불과 20m 가는데 지그재그로 움직이기도 해 정말 피가 마른다"고 말했다. 중대 전차 13대 중 절반은 이런 증상이 있다.

기름이 새는 등 사소한 고장도 잦다. 움직일 수 있을 정도만 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50톤의 육중한 전차가 길에서 '퍼져 버리는' 경우가 가장 끔찍한데, 1년에 한 두 번은 그런 일이 생긴다.

당연히 정비 및 관리에 온 신경을 쏟는다. 정비 교범에 규정된 점검 외에 훈련을 앞두고 별도의 종합 점검을 한다. 1년에 전차당 20번 이상 엔진을 들어내 살핀다. 김 소령은 "그렇게 했는데도 기동을 하다 고장이 나면 참 속이 상한다"고 했다. 그래서 보통 표준 속도(시속 30㎞)보다 느린 시속 15~20㎞ 정도로 운행한다. 무리가 갈까 싶어서다.

미국에서 더 이상 부품을 생산하지 않아 수리도 쉽지 않다. 상당수 부품은 국산화해 쓰고 있지만 가끔 '부품 찾아 삼만리'를 해야 한다. 같은 기종이 있는 다른 부대에 일일이 연락해 재고를 찾아야 하고, 이도 아니면 못쓰게 된 전차에서 부품을 떼내 오기도 한다.

전차를 둘러보던 중 포신마다 적힌 이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유비 관우 장비 등 삼국지 시리즈도 있고, 이순신 강감찬 등 명장들 이름도 보인다. 중대장 전차는 '대왕세종'이다. 중대원들이 저마다 붙인 애칭에서 정이 묻어났다. "공구를 사들고 휴가복귀하는 대원들도 있습니다. 평소 '이런 공구가 있으면 유용할 텐데'하고 생각했다가 밖에서 사오는 거지요."(김 소령)

'어르신 전차'를 모시느라 힘이 들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 전차장 박홍래(30) 중사는 "사격 훈련을 나가 '명중'이란 말을 듣고 나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고 기특해 했다.

M48A3K 전차는 전력화 당시만 해도 기계화보병사단이나 기갑여단에 배치됐지만, 86년 K1 전차가 나오면서 점차 밀려 보병사단 예하 전차부대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시험 평가 중인 흑표 전차가 실전 배치되면 개량형인 M48A5K나 K1 전차에 자리를 내주고 수년 뒤엔 퇴역할 예정이다.

곳곳에 녹이 슨 전차들,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사무실, 정비고가 따로 없어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 엔진을 꺼내 점검 중인 장병들…. 부대를 나서며 자꾸 뒤를 돌아보자 김 소령이 '그럴 것 없다'는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다.

"오늘 밤 전쟁이 벌어져도 이 동부전선을 기필코 사수할 자신이 있습니다. 전투가 장비만 갖고 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얼마나 지형을 잘 알고, 훈련을 열심히 하는데요."

양구=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