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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은행 = 최고 나쁜 은행? 美 골드만 삭스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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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은행 = 최고 나쁜 은행? 美 골드만 삭스의 불편한 진실

입력
2009.10.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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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미국 의회인가, 아니면 골드만 삭스 이사회인가."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의 신작 영화 <자본주의: 러브스토리> 에서 카메라가 미 의사당 내부를 비출 때 나오는 내레이션이다. 장면은 바뀌어 맨해튼의 골드만 삭스 본사 건물을 비춘다. 마이클 무어는 "월가는 겨우 수백만달러로 의회를 매수해 수십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냈다"며 월가를 원색적으로 비난한다.

지난 주말 미 전역에서 확대 개봉된 이 영화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를 일으킨 월가의 탐욕을 정면으로 다뤘다. 폭스뉴스 등 우파 언론은 "사악하다"고까지 평했지만 금융위기로 일자리를 잃고 집을 압류당한 미 국민들은 이 영화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리만브라더스 사태 1년을 맞아 월스트리트, 그리고 그곳을 대표하는 골드만삭스가 '선악의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골드만 삭스=나쁜 은행?

골드만삭스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매우 양면적이다. 월스트리트 최고의 투자은행(IB), 그래서 아이비리그 출신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직장.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범의 하나이면서도,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와 로비력으로 문제를 덮어버리는 부도덕한 집단이란 시각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리만브라더스 파산 1주년을 맞아 월스트리트저널이 실은 블랙 유머형 기사, '악마의 사전'은 '나쁜 은행(Bank, Bad)'이란 단어의 뜻을 '골드만 삭스'라고 풀이해 놓기까지 했다.

사실 메릴린치 리만브라더스 베어스턴스 등 경쟁IB들이 위기 와중에 줄줄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골드만 삭스는 2분기 34억4,000만달러의 순익을 올려 사상 최고의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달 초에는 유명 잡지 <베니티 페어(vanity fair)> 가 부와 영향력 등을 기준으로 매년 선정하는 미국의 '파워 100인' 중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 삭스 최고경영자(CEO)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구제금융을 받은 지 1년도 안 돼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 미 언론과 감독당국은 골드만 삭스가 금융위기를 겪고서도 어떻게 이런 깜짝 실적을 기록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들여다보게 됐다.

골드만 삭스가 사는 법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를 통해 밝혀진 가장 놀랄 만한 사실 중 하나는 초고속 매매(HFT: High Frequency Trading)였다. 일명 '플래시(Flash) 트레이딩'이라 불리는 HFT는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초고속 연산이 가능한 슈퍼컴퓨터를 배치, 일반 투자자들의 주문 상황을 미리 파악한 뒤 이를 이용해 초단기 매매를 하고 이익을 챙기는 것을 말한다.

한 펀드가 특정 주식에 대해 대량 매수 주문을 내면 이 주문이 시장에 도달할 때까지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주식을 사 버린 후 주문이 시장에 알려지면 팔아버리는 식이다. 포브스 등에 따르면 골드만 삭스는 전체 플래시 트레이딩의 20% 가량을 차지하며 이를 통해 거액의 수익을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슈퍼 컴퓨터를 이용한 사실상의 불공정 거래다.

대형 기관투자자 등 일부 고객들에게만 비밀 리서치 자료를 넘겨주고 있다는 폭로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골드만 삭스가 리서치와 트레이딩 부서가 공동으로 매주 '거래 비밀회담(trading huddle)'를 개최하며, 이 회의에서 나온 정보를 50여곳의 대형 투자자들에게 몰래 넘겨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반에 공개된 보고서에서 '중립'으로 기재돼 있던 종목을 비공개 보고서에서 먼저 매수하라고 추천한 뒤, 공개 보고서에는 해당 종목이 오르고 나서야 매수 추천으로 변경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골드만 삭스가 돈을 버는 가장 큰 비결은 갖은 문제 거래에도 불구하고 제재를 받지 않는 '막강한 로비력'에 있다는 데 금융계 인사들은 동의한다.

지난해 9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직후, 골드만 삭스는 은행지주회사가 되겠다고 약속하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로부터 긴급자금을 받아 금융경색을 견뎌냈다. 그러나 골드만 삭스는 자사에 은행지주사에 적용되는 강화된 리스크 규제를 면제해 주고 대신 그동안 IB에 적용돼 온 SEC의 규제를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Fed에 요구했다.

뻔뻔해 보이는 이 요청을 버냉키 Fed의장은 받아들였고, 골드만 삭스는 예전처럼 고위험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해 의회일각에서 비판이 제기됐지만, 결국 구속력 있는 대책은 나오지 않은 채 의원들이 버냉키 의장에게 질의서를 보내는 것으로 그쳤다.

폴 크루그먼 교수가 칼럼에서 "골드만 삭스에 좋은 것은 미국에 나쁜 것"이라고 외친 데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들이다.

■ 골드만삭스는

1869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 전세계 24개국에 지사를 둔 140년 전통의 세계 최대 투자은행(IB). 주식 국공채 상품 투자자문 인수합병 등 거의 모든 IB분야를 망라하고 있으며,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지배적 위치는 더욱 공고해졌다는 평가다. '회전문인사'를 통해 숱한 금융관료를 배출함으로써 막강한 인맥과 정보력을 구축, '월스트리트의 비밀사교조직'으로도 불린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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