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근(50) 박금옥(49)씨 부부는 명절이 다가오면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진다. 7명의 아이를 키우는 다둥이 가족이건만, 북적대던 집은 오히려 텅 비어 버린다. 강씨 부부가 키우는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아이들이 명절 때면 제 핏줄을 찾아 각각 흩어지기 때문이다.
추석을 닷새 앞둔 28일 오전 서울 중랑구 망우동 자택에서 만난 강씨 부부는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맞이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1일엔 지현(16ㆍ가명) 소현(12) 자매가 전북 전주시로, 2일엔 재효(14) 재순(12ㆍ여) 재성(10) 재우(6) 4남매가 서울 미아동의 친척집으로 떠나 추석을 보낼 예정이다.
박씨는 "지현 자매는 전주 어머니를 보러 가고, 재우 남매는 친아버지가 연락이 끊어져 큰아버지 댁에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명절이면 '이산가족'이 되는 강씨 가족은 그러니까 핏줄 없이 모인 공동생활가정, '그룹 홈'이다. 아들(10)과 세 식구가 단출하게 살던 강씨네 집에 2005년 말 지현 자매가 들어왔고, 이듬해 재효 4남매도 입주하면서 식구는 9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이 사는 곳은 4층짜리 연립주택 맨 꼭대기 층의 72.72㎡(22평) 남짓한 일반 가정집. 늘어난 식구 덕분에 거실은 강씨 부부의 침실이 됐고 방 셋은 아이들 차지다.
거실에 놓인 피아노와 동화책이 가지런히 꽂힌 책장 등으로 미뤄 거실마저도 실은 아이들 몫일 게다. 거실 한 켠에 놓인 생수통으로 만든 화분엔 담쟁이 넝쿨 한 줄기가 천장을 향해 뻗어 있다. 박씨는 "우리 애들이 직접 만든 화분이다"라고 자랑했다.
거실 벽에 걸린 아이들의 사진을 보자 박씨가 뭉클한 듯 했다. "재성이가 처음 왔을 때는 밤에 숨도 못 쉴 정도로 천식이 심해 걱정이 많았는데, 이젠 거의 다 나아 다행이예요."
강씨 부부 품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이나 가출 등으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결손 가정 출신들이다. 재효 4남매가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많이 썼던 말이 '너무'였다. "밥이 너무 맛있어요." "여기 너무 좋아요." "요즘 너무 행복해요."
엄마가 가출한 뒤 아빠가 네 남매를 방치해버려 새벽 1~2시까지 놀이터에서 놀거나 한 달 넘게 학교를 무단 결석하기도 했다. 끼니조차 거를 때도 많았던 아이들에게 강씨 집은 '너무' 행복한 가정이었다.
실제 아이들은 이 집에 온 뒤 '너무' 많이 달라졌다. 숫자를 100까지 세지 못해 수학 시험에서 5점을 받았던 재성이는 이제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다. 아기 때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한 탓인지 "무섭다"며 대문 밖에 나가지도, 혼자 방 안에 있지도 못했던 재우는 이젠 태권도에 푹 빠질 정도로 씩씩해졌다.
박씨는 "소현이는 전교회장을 할 정도로 활발하고 재순이는 앞으로 청소년 상담사가 될 거래요"라며 "아이들이 건강해지고 성적도 올라 뿌듯하다"고 말했다.
부부 모두 사회복지사로, 박씨는 특히 아이들을 좋아해 결혼 전부터 비영리 탁아소를 운영했다.그는 "아이들이 보육원이 아니라 따뜻한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그룹 홈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받는 지원금은 그룹홈 인건비 240만원과 보조금 23만원. 아이들에게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 120만원을 합쳐 아홉 식구가 월 380여만원으로 생활하면 늘 빠듯하다. 전국아동청소년그룹협의회에 따르면 이 같은 그룹 홈은 전국에 350여개에 달한다.
여느 가정처럼 가족간 갈등도 있다. 요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학교 2학년 재효가 공부는 뒷전이고 친구랑 놀러다닐 궁리만 해 박씨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박씨는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어서 쉽게 야단치거나 고치라고 말하기 어려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서도 "그래도 이내 잘 따라와주는 아이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박씨 부부를 '이모'와 '이모부'라고 부른다. 아이들에겐 여전히 돌아가야 할 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명절이 되면 부쩍 엄마, 아빠를 찾는다. 얼마 전 강씨와 함께 등산을 갔던 재우가 추석 얘기가 나오자 불쑥 "나도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라고 혼잣말을 했다. 생전 엄마 얘기를 꺼내는 법이 없던 아이였기에 마음이 더 아팠다고 했다.
박씨는 "그룹 홈의 목표가 가정 복귀에 있기 때문에 명절은 꼭 아이들을 친 가족에게 보내려고 한다"면서도 "하지만 아이들이 떠난 집에서 명절을 나려면 마음이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남보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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