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남편은 쉽게 잠들지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지만 만약 자신이 나영이 아빠라면(그러나 우리의 일이 될 수 있었다) 어떻게 대처했을까. 두 가지 경우로 좁혀졌다. 술을 마시고 취해 있었다는 이유로 감형을 하는 사법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기에, 법보다 주먹이라고 자신이 직접 가해자를 처벌하고 싶다는 생각, 또 한편으론 그렇게 되어 영어의 몸이 되면 정작 나영이를 돌볼 수 없을 테니 처벌은 국가에 맡기고 아이를 보듬으며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
그가 그런 생각으로 뒤척이고 있는 동안 인터넷 기사를 읽어 비교적 사건 정황을 상세히 알고 있던 나는 공포와 분노로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나영이의 엄마처럼 국민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 아이가 하루 빨리 그 충격에서 벗어나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쉬쉬 주변 사람들을 입단속시키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충격을 지우려 하는 대신 그 충격을 극복하도록 적극적인 치료를 시작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 모르겠다.
그 무엇도 자신할 수 없다. 살아 있으되 죽어 있는 시간이 되리란 건 분명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가해자에 대한 분노로 몸부림칠 것이다. 많은 네티즌들이 분노를 넘어 범인에게 저주라는 형을 내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으로.
소설가 하성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