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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의 나의 꿈 나의 도전] <15> 언론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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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의 나의 꿈 나의 도전] <15> 언론이 문제다

입력
2009.10.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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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정권의 영구집권을 허용하느냐 아니면 박정권을 물리치고 민주화를 달성하느냐의 갈림길인 1971년! 일단 희망은 있었으니, 그것은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후보의 혜성 같은 등장이었다. 정치 후진국에서 선거로 민주정부가 들어서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그러나 야당후보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일 때는 선거가 민주화를 이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의 자유당정권이나 필리핀의 마르코스정권이 붕괴한 것은 모두 야당후보의 승리가 확실시되는데도 부정선거를 통해 집권당후보를 당선시키려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그해 4월 27일의 대통령선거는 한국의 민주화에 대단히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은 일단 교련반대와 언론민주화투쟁에 주력했다. 서울법대에서는 3월 15일에 교련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해서 95%의 반대를 확인하고 곧바로 수강신청을 거부한 데 이어 성토대회를 열고 시위에 나섰다. 4월 7일 교련반대 시위를 했는데, 경찰저지선에 막혀 연좌농성을 하는 가운데 서울대 총학생회장이기도 한 최회원 학생회장이 경찰의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며 실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이것은 학생들을 격분케 해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인 4월 8일 서울대 총장 시절 데모학생들에 대한 중징계로 유명했던 유기천 교수가 형법학 강의시간에 "지금 박정희정권은 군 고위 장교들을 대만에 보내 총통제를 연구시키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렇잖아도 박정희정권이 영구집권을 획책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터에 이처럼 상당히 구체적인 정황을 밝혔으니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었다. 유교수는 그날 "정의가 실종된 나라에서 법률 강의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더 이상 강의를 하지 않았다. 유교수의 총통제 발언은 학생들의 반독재투쟁을 크게 고무했다.

교련반대투쟁은 당연히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서울에 있는 대학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등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자유의 종'만 이를 보도했을 뿐 제도언론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지금이나 그때나 언론이 문제였다. 지금은 왜곡보도가 문제지만 그때는 숫제 보도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흔히 학생들의 과격시위에 대해 '왜 과격한 행동을 하나? 순리적으로 자기의 주장을 펴면 되지'라고 말하나 순리적으로 주장을 펴면 언론에 한 줄도 보도되지 않고, 언론에 보도되지 않으면 그런 주장은 없는 것처럼 되니 과격한 행동이라도 해서 언론에 보도되게 했다. 심지어 구속이 돼야 신문에 보도되니 자기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서는 구속도 감수해야 했다.

언론에 대한 말이 나온 김에 오늘의 언론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 많은 잘못이 있지만 언론의 편가르기만큼 잘못된 것이 없을 것이다. 본래 편가르기는 정치에서 시작되었으나 언론에서의 편가르기가 더 심하고, 이것이 정치에서의 편가르기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편가르기에 집착해 있는 언론이 자기네 입맛에 맞는 정치인이나 발언만을 골라 보도하니 정치인들은 언론의 입맛에 맞는 발언을 하게 되어 정치에서의 편가르기가 더 심화된다.

그러면 언론은 왜 편가르기에 집착할까? 언론사의 생존을 위해서다. 어느 한편에 서서 상대편을 공격해야 구독률이 높아 생존할 수 있으나, 이것은 언론의 사명을 포기한 것이다.

불편부당한 신문의 기사나 논설이 훨씬 더 공정하고 유익해도 거기서는 자기가 싫어하는 쪽을 공격하는 맛을 느낄 수 없어 구독하지 않게 된다. 편가르기로 나라가 망하건 말건 상대편을 무지막지하게 공격하는 언론이라야 살아남고, 합리적인 언론은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언론이 개혁되지 않는 한 정치가 개혁될 수 없음은 물론 국민화합도 사회평화도 기대할 수 없다.

조선·동아·중앙과 한겨레·경향이 편가르기에 집착하는데, 이 가운데 어느 한쪽 신문만을 오래 보면 반드시 편향된 사고를 하게 돼 상대편을 무조건 증오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은 국가적 폐해가 엄청나다는 점에서 이들의 망국적 행태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편가르기에 집착하지 않는 언론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러면 국민이 각성해서 편가르기 언론을 배격하고 불편부당한 언론을 선텍해야 한다. 국민의 수준에 따라 정치의 수준이 결정되듯이, 언론의 수준 또한 국민의 수준에 따라 결정되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의 종'을 낼 때마다 어용언론을 규탄하며 언론인의 각성을 촉구했다. 서울법대에서는 3월 23일 '언론화형식'을 거행하고는 왜곡보도를 일삼는 '대학신문'의 구독 거부를 결의했다. 정부의 비위를 거스르는 기사를 쓰면 중앙정보부에 끌려?실컷 두들겨 맞던 시대이긴 했지만, 그러나 언론의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 용납될 수는 없었다.

심재권과 나는 어용언론에 경종을 울리는 집회를 열기로 했다. 그래서 서울 문리대, 법대, 상대에서 열 명씩 뽑아 어용언론을 규탄하는 기습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3월 26일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성토대회를 열었는데 광화문 부근 여러 다방에 분산해 있다가 오후 2시 반에 일제히 모이기로 했다.

정확하게 2시 반에 동아일보사 앞에 약 30명이 모여 '민중의 소리 외면한 죄 무엇으로 갚을 텐가'라는 현수막을 들고는 '언론화형 선언문'을 낭독하고 '언론인에게 보내는 경고장'이란 유인물을 행인들에게 나눠 주었다.

나는 심재권과 함께 동아일보사 건너편 크라운제과에서 상황을 지켜봤는데 불과 10여분 후에 몇몇 학생이 크라운제과로 뛰어들었다. 법대의 장성규 부회장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는데 경찰이 덮쳐 장성규와 5, 6명의 학생이 연행되고 나머지는 도망쳤다고 했다.

이 시위는 성공적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어용언론을 규탄하는 집회를 연 데다 학생회 부회장이 연행되었으니 언론에 보도될 것 같았고, 또 이 집회 후 기자들의 '언론자유 수호투쟁'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부터 언론인들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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