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100만건의 스팸 문자를 보낸 혐의(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법정에 섰던 한모(36)씨는 기소된 지 7개월 만인 지난 9월 초 마침내 억울함을 풀었다. 그가 변호인도 없이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자 애쓴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민소영 판사 덕분이었다.
한씨는 수사단계에서 혐의사실을 인정해 2월 약식 기소됐다가 돌연 정식재판을 요구했다. 그는 첫 공판에서 "나는 스팸 문자를 보냈다고 지목된 A사의 '바지사장'일 뿐이고 실제 문자를 보낸 곳도 모기업인 M사"라며 "M사 대표가 처벌받으면 연대보증을 선 자신이 채무를 떠안게 돼 대신 처벌받으려 한 것인데, M사 대표가 해외로 도피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정을 들은 민 판사는 "무죄 주장만이 능사가 아니다"며 한씨에게 '바지사장'임을 증명해줄 증인을 신청할 것을 일러줬다. 한씨는 M사의 관리팀장을 생각해냈고, 민 판사는 한씨가 직접 증인 출석을 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검찰 측에 증인을 출석시킬 것을 요청했다. 이렇게 시작된 증인 심문으로 얽혔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다음은 스팸 문자의 실제 발송처를 밝히는 것. 민 판사는 증인에게 발송처를 알만한 사람이 있는지 추궁했고, M사 인터넷사업팀장과 팀원을 추가로 증인으로 불렀다. 이들에게 "문자이용 대금을 누가 지불했는지 확인하면 된다"는 답변을 들은 민 판사는 인증기관 사실조회를 거쳐 대금 지불처가 M사임을 확인했고, 이를 근거로 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느라 통상 한 두 달이면 끝날 재판은 반 년 넘게 이어졌다. 민 판사는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법관의 몫을 했을 뿐"이라며 "검찰도 재판 중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확정됐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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