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급발진 사고와 관련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사고 원인의 입증 책임을 운전자가 아닌 차량 제조ㆍ판매회사에 물은 판결이 나왔다. 기존 판례는 소비자에게 입증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데다,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급발진 관련 소송이 수십건에 달해 상급심의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단독 송인권 판사는 30일 벤츠 차량을 몰다 급발진 사고를 당한 조모(72)씨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수입판매업체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같은 모델의 신차 1대를 인도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운전자가 기계적 결함을 증명하지 못했더라도 통상적인 방법으로 운전한 사실만 입증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로 소비자의 입증 책임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재판부는 "고도의 기술이 집약돼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의 경우 소비자가 제품의 결함과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면서 "제조업체에서 제품 결함이 아닌 다른 사고 원인을 입증하지 못했다면 제품 결함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조씨는 사고 당시 신체ㆍ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였고 특별한 사고 전력도 없다"면서 "특히 이 사고는 주행 중에 발생해 시동을 건 직후에 비해 운전자 과실이 발생할 여지가 적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벤츠 승용차를 구입한 조씨는 같은 달 서울 강동구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주차장 입구를 빠져나오며 우회전 하던 중 차량이 갑자기 30m 가량 질주해 건물 외벽에 충돌, 파손되자 소송을 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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