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표면은 울퉁불퉁하다. 이건 상식이다. 하지만 이 사실이 확인된 1609년엔 세상의 통념을 뒤집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직접 만든 구경(지름) 1.5㎝짜리 망원경으로 달 표면이 매끄럽지 않다는 걸 세상에 처음 알렸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인류의 눈은 우주를 향해 있다. 그 사이 망원경은 진화를 거듭했다. 조만간 인류의 눈과 우주 사이에 놓일 망원경의 구경은 갈릴레이 망원경의 1,600배가 넘는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29, 30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프라자호텔에서 '거대 망원경과 한국 천문학의 새로운 도약'을 주제로 42회 한림심포지엄을 열었다. 새로 등장할 거대 망원경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미국 캐나다 일본 대 한국 미국 호주
천문학자의 가장 큰 욕심은 구경이 큰 망원경을 갖는 것이다. 누구보다 먼저 우주의 새로운 모습을 보려면 성능이 뛰어난 망원경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구경이 클수록 빛을 많이 모을 수 있어 희미한 천체까지 자세히 보인다. 영국의 아이작 뉴턴(구경 3.3㎝)과 윌리엄 허셜(126㎝), 미국의 조지 헤일(후커 망원경 2.5m·헤일 망원경 5m) 등 유명 천문학자들이 망원경 개발에 열을 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망원경 개발 경쟁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제는 몇m 구경은 어림도 없다. 최근 구경이 30m 안팎이나 되는 초대형 망원경 3대의 제작 계획이 구체화했다.
3대 가운데 개발 속도가 가장 앞선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와 캘리포니아주립대, 캐나다대학연합(ACURA)이 함께 만드는 '30m 망원경(TMT)'. 이름의 30m가 바로 빛을 모으는 주반사경의 구경이다. 지름 1.5m짜리 작은 거울 500개를 이어 붙여 만들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일본 국립천문대도 이 사업에 합류했다.
미국 카네기천문대와 하버드대 스미소니언천문대, 호주 국립천문대가 함께 만드는 '거대마젤란망원경(GMT)'도 TMT를 바짝 따라붙고 있다. GMT는 TMT와 마찬가지로 설계 막바지 단계다. GMT는 지름 8.4m짜리 거울 7개를 이어 붙여 구경 25m짜리 주반사경을 제작할 예정이다.
한국은 2003년부터 옵서버 자격으로 GMT 제작에 관여하다 올 1월부터 본격 참여하기 시작했다. 총 제작비 7억4,000만달러의 약 10%씩을 각각 한국과 호주가, 나머지는 미국이 부담한다. 한국의 GMT 참여를 총괄하는 김영수 한국천문연구원 대형망원경그룹장은 "분담금과 국내 개발 비용을 포함한 총 예산이 909억원"이라며 "올 초 첫 분담금으로 약 10억원을 냈다"고 밝혔다.
TMT와 GMT의 경쟁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치열하다. 일단 개발 속도나 망원경 크기로 봐선 TMT가 약간 우세하다. 둘 다 2018년이나 그 다음 해가 목표지만 TMT의 설계가 좀 더 진행됐다. 또 구경도 GMT보다 크다.
그러나 기술적 측면에서는 GMT가 유리할 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망원경을 이루는 거울 조각이 많을수록 정보가 쪼개지기 때문에 그만큼 영상의 질이 떨어진다. 작은 거울 500개를 붙여 만드는 TMT의 주반사경보다 7개로 만드는 GMT가 더 나은 영상 정보를 확보할 수 있을 거란 얘기다.
유럽도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유럽남부천문대가 '유럽초대형망원경(EELT)' 개발에 시동을 건 것이다. TMT나 GMT보다 설계가 늦고 건설 장소도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완성되면 규모 면에서 세계 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름 1.5m짜리 거울을 800~900개 이어 붙여 구경 42m의 주망원경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거울의 총 면적이 TMT의 2배에 달한다.
■ 천문학계 기대 한 몸에
국내 최대 구경 망원경은 보현산천문대의 1.5m짜리다. 세계 50위권 밖으로 밀려난 지 이미 오래다. 현재 세계 최대 구경은 '케크(Keck)' 망원경. 미국 하와이에 1992년과 96년 2대가 건설됐으며, 구경은 10m급이다.
이화여대 물리학과 양종만 교수는 "우주의 생성이나 진화 과정을 밝힐 수 있는 천체는 아주 멀리 있거나 어두워 지금 쓰이는 망원경으론 관측할 수 없는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구경 20m가 넘는 초대형 망원경에 거는 국내·외 천문학계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김 그룹장은 "GMT는 현재 천문학 연구에 활발히 이용되는 구경 8m급 망원경보다 집광력이 7배, 분해능이 3배에 달한다"며 "다른 별 주위를 도는 작고 희미한 행성까지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분해능은 망원경의 상이 얼마나 뚜렷하게 보이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다. 일반적으로 구경이 클수록 분해능이 좋아진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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