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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특집/ 온돌이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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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특집/ 온돌이 있는 집

입력
2009.09.30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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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향집은 빈집이 되었다. 아버지는 한때 전국 팔도를 다니며 큰 집을 짓던 대목수였다. 아버지가 세상에 남긴 것은 집이었다. 아버지는 큰 집을 짓는 대목수였지만 정작 우리 식구는 작고 볼품없는 집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그 집에서 12남매를 낳아 키웠다.

세상을 뜨기 한 해 전 아버지는 늦가을 무렵부터 마당에 나무를 쌓아놓고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말없이 장작을 패 차곡차곡 대문 옆에 쌓았다. 한쪽 벽 추녀자락까지 장작이 쌓였고 그 다음해 봄, 아버지는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셨다. 아버지의 유언은 "이 집을 절대 팔지 마라! 명절에라도 이곳에 모여라"였다.

가끔 나는 빈집이 된 고향집을 찾아가 아버지가 생전에 패놓은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하룻밤을 지새우곤 한다. 눅눅해진 아궁이에 불을 지펴놓고 마당에 나가 굴뚝으로 하얀 연기가 오르는 것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 눈이 젖기도 한다.

추석이다. 어김없이 한가위 달이 차오른다. 추석은 환한 달빛을 밟고 집으로 가는 날이다.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집! 모두의 마음속에 똑같이 있는 집!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고 계신 집! 아궁이 한가득 잉걸불을 지펴놓고 저녁 늦게까지 웃음소리로 떠들썩한 집!

몇 해 전 추석에 62세를 먹은 큰 형님이 84세인 어머니에게 선물을 사가지고 왔다. 그 선물은 다름아닌 바바리맨 인형이었다. 30cm 정도 키의 바바리맨은 약간 뚱뚱한 몸집에 안경을 끼고, 대머리에 콧망울이 크고, 검은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그 문제의 인형이 추석 전날, 아들, 손자, 며느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방 한가운데에 꺼내졌다. 바바리맨은 잔뜩 바바리코트 자락을 여미고 있었다.

순간, 큰 형님이 야, 하고 소리를 쳤다. 그리고 동시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검은색 바바리코트를 쥐고 있던 그 바바리맨이 바바리자락을 확, 열어 제치며 "으하하하~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소리"를 지껄이더니, 맨몸에 커다란 심볼을 아래위로 흔들기 시작했다. 심볼은 아주 거대하고 사실적이었다.

며느리들은 민망하여 고개를 돌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40년을 살아오면서 들었던 웃음 중 가장 기분좋은 웃음으로 눈물까지 짜내면서 웃어제꼈다. 바바리맨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바리코트 자락을 여미며, 처음 그 자세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더 재미난 광경이 이어졌다. 이 바바리맨 인형은 소리를 치면 반응을 하였는데, 어머니께서 그 인형을 향해 한명씩 아들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영민아" 하고 소리를 치자 그 바바리맨 인형이 "으하하하~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소리"를 지껄이더니 커다란 심볼을 어머니 앞에 흔들기 시작했다. 다시 어머니와 아버지, 형님, 형수님 모두가 웃음바다가 되면서 다들 뒤로 넘어갔다.

그 다음, 또 다른 아들 이름이 불러지고 한명씩 차례대로 어머니 앞에서 커다란 심볼을 흔드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어머니는 과수원을 하다가 사고로 죽은 넷째 형님의 이름도 빠뜨리지 않았고 똑같이 뒤로 넘어갈 듯 웃어제꼈다. 정말 죽은 자식이 어머니 앞에 서서 커다란 심볼을 흔들어 보이기라도 하는 듯했고 나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그 바바리맨 인형은 지금 고향집 안방 텔레비전 위에 바바리 깃을 여민 채 서 있다. 어머니는 가끔씩 아들 녀석들이 생각나면, 고향집의 그 바바리맨을 향해 아들 이름을 소리쳐 부를 것이다.

●고영민 12남매의 막내로 자랐다. 이제는 보기 드문 대가족 중심의 농촌공동체 체험을 풀어낸 시편으로 주목받고 있다.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2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수상 등단. 시집 <악어> (2005) <공손한 손> (2009).

고영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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