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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북핵 '그랜드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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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북핵 '그랜드 디자인'

입력
2009.09.30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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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에 밝힌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은 북핵 폐기와 동시에 북한에 안전보장과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타결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단계별 협상은 북핵 폐기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장애가 조성되면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역진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미국은 포괄적 패키지 딜(Comprehensive Package Deal)을, 한국은 그랜드 바겐을 제안했다. 북한이 핵 폐기와 관련한 근본적 조치에 나설 경우 한꺼번에 포괄적 대가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북핵 일괄타결의 적기

한미 양국의 제안은 핵 폐기 협상을 늦출 경우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가 굳어질 수 있다는 다급성을 반영한다. 일괄타결의 핵심은 핵 폐기와 안전보장 및 경제지원의 교환이다. 북한은 핵 보유국 지위를 갖고 과거와 같은 핵 동결 또는 불능화 차원의 협상과는 질적으로 다른 핵 군축 협상과 함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려는 의도에서 포괄적 패키지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존의 선(先) 핵 폐기론에서 그랜드 바겐으로 입장을 바꾼 것은 북미 양자대화를 통한 일괄타결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양자협상을 앞둔 미국이 그랜드 바겐에 신중론을 펴는 것은 안보리 제재 국면에서의 일괄타결 주장이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것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기다리는 전략에서 갑자기 그랜드 바겐을 들고나간 이 대통령 제안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핵 문제는 남북분단, 북미 적대관계 등 역사ㆍ구조적 산물로 일시에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를 거의 다 내놓은 지금이 일괄타결의 적기다. 포괄적 패키지든 그랜드 바겐이든 포괄적 일괄타결의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 앞으로 있을 포괄 협상은 냉전질서를 평화질서로 바꾸는 큰 틀의 구조변화를 수반할 수 밖에 없다. 구조변화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고 사전정비도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와 달리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과 김정일 정권교체를 추진하지 않고 비핵화에 초점을 맞출 경우 북핵 협상의 진전 가능성은 높다.

북핵 협상의 관건은 북미의 적대관계 해소다. 이는 북한의 체제보장과 관련된 문제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긴요한 과제다.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에 따른 미군 철수와 한미연합사 해체 등을 우려해서 이를 서두르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 반환과 주한미군 재배치 등이 이뤄질 경우 평화협정 체결에 따른 미국의 부담이 줄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북미간 포괄 협상의 성공 가능성은 높다. 동유럽에서의 MD 체제구축을 포기한 오바마 행정부가 동북아지역에서도 MD 체제구축을 포기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얻어 북한 비핵화에 가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개입(engagement)과 확대전략으로 돌아가 북한을 미국의 영향권으로 끌어들이려 할 가능성이 높다.

대화국면에 적극 대비해야

통미봉남이란 말이 다시 나오지 않도록 우리 정부도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할 것이다. 아마 그런 차원에서 그랜드 바겐 제안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랜드 바겐이 이뤄지려면 우선 그랜드 디자인이 마련돼야 한다. '원샷 딜' 같은 즉흥적 발상으론 지난 20여 년간 끌어온 북핵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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