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연휴다. 귀성하고 귀경하랴 쉴 시간이 어디 있으랴 싶다. 최신 영화를 큰 스크린으로 보며 눈을 호사시키고 싶지만, 이런 짧은 연휴엔 몸만 혹사시키기 십상이다. 신선도는 극장에 비할 수 없겠지만, TV 화면으로도 만족할 만한 영화들이 적지 않다. 지상파TV의 알짜 영화들을 꼭 집어 시청하는 것도 몸 편하고 즐겁게 추석을 보내는 현명한 방법일 듯하다.
올 추석영화 대세는 '웃음'
힘겨운 경제에 치이고 교통대란에 지친 귀성객들의 고단한 심신을 고려한 것일까. 올해 지상파TV 추석특집 영화의 대세는 웃음이다.
제각기 웃음의 대표 전령사를 자부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영화는 KBS2에서 방영하는 '좋지 아니한가'(1일 밤 12시 35분)와 '올드 미스 다이어리'(2일 밤 12시).
'좋지 아니한가'는 뇌성마비 장애인의 감동적 이야기를 다룬 '말아톤'으로 화려한 데뷔식을 치른 장윤철 감독의 2007년 작품. 한 집에 모여 살지만 애정표시는 전혀 하지 않는, 콩가루 가족의 에피소드를 다뤘다. 별볼일 없는 가족도 함께 있으면 살아가는데 그래도 좋지 아니한가 하는 주제를 유별난 웃음으로 그렸다. 동명의 TV드라마를 스크린으로 옮긴 '올드 미스 다이어리'도 매력적인 영화다. 방송국 성우인 올드 미스 미자의 요절복통 연애담을 뼈대로 삼았다. 사랑과 일과 가족애의 의미를 풋풋한 웃음으로 전달한다.
감우성과 김수로가 호흡을 맞춘 코미디 '쏜다'(MBCㆍ1일 밤 12시 25분)도 웃음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바른생활 사나이'로만 살아왔던 한 남자의 꼬이고 꼬인 인생이 헛헛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동욱, 현영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최강 로맨스'(MBCㆍ2일 밤 12시 50분)도 전파를 탄다. 열혈형사와 천방지축 여기자의 로맨스가 배꼽을 노린다. 구조조정 위기에 처한 조폭들이 폐업 직전의 호텔 경영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야단법석을 그린 '마강호텔'(MBCㆍ3일 밤 1시 45분)도 시청자들을 만난다.
장진 감독이 기획하고, 정재영이 주연한 흥행작 '바르게 살자'(SBSㆍ3일 밤 12시 20분)도 웃음을 무기로 시청률 경쟁에 나선다. 융통성은 전혀 없는 지방도시 순경이 모의 은행강도 진압 훈련에서 강도 역할을 맡았다가 벌어지는 요절복통의 상황을 그렸다.
액션과 스펙터클도 빠지지 않아
장대한 스펙터클과 화려한 액션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으려는 대작들도 준비돼 있다.
홍콩 누아르의 거장 우위썬 감독의 '적벽대전' 1, 2편(MBCㆍ3일 밤 11시 10분, 4일 밤 10시 35분)은 특히 주목해야 할 영화다. 고대 동아시아 역사상 최대의 전투로 기록된 적벽대전의 원인과 과정, 결과를 그린 대작으로 전쟁영화가 줄 수 있는 시각적 쾌감을 한껏 선사한다. 특히 제갈공명과 손권과 주유가 수적 열세를 이겨내고 조조 군대에 맞서는 과정이 장관을 이룬다. 국내 극장가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D.O.A'(MBCㆍ4일 밤 1시)는 미녀들의 액션이 눈길을 잡는다. Dead Or Alive(죽느냐 사느냐)란 세계 제일의 격투기 경기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오빠를 찾아나선 주인공이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과정을 담았다.
리암 니슨이 주연한 '테이큰'(KBS2ㆍ4일 밤 11시 45분)은 지난해 봄 국내에서 깜짝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다. 딸을 납치 당한 전직 특수요원의 복수를 담았다.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들도 있다. 올해 독립영화 열풍을 일으킨 '워낭소리'(SBSㆍ4일밤 11시 10분)가 TV에서 첫 방영된다. 평생 땅을 갈아온 한 노인과 소의 인연이 마음을 울린다.
밴드 활동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중년 남성들의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담담하게 전하는 이준익감독의 '즐거운 인생'(SBSㆍ4일 밤 12시 40분)도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다. 충무로의 주요 배우로 입지를 굳힌 김윤석과 정진영, 청춘 스타 장근석의 연기 앙상블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