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우파의 승리는 좌파보다 '좌파의 정책'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했기 때문이다.'
독일총선에서 11년 만에 보수연정이 승리한 것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29일 유럽 각국에서 우파정권이 확산하는 이유를 이같이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보수진영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위험한 유럽사회주의 스타일의 건강보험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사실 유럽에서 그 같은 아젠다를 내건 것은 좌파가 아닌 우파"라고 지적했다.
최근 유럽의 선거흐름을 놓고 좌파의 정책과 이념이 몰락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라는 얘기다.
뉴욕타임스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유럽의 대표적인 집권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앵글로-색슨'식의 자본주의의 과잉을 비난해왔고, 국가 개입 정책 도입에 앞장서는 등 사회주의 이념을 이용해 집권에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유럽의 집권 중도우파는 ▦넓은 복지 혜택 ▦국영 건강보험 ▦탄소 배출 엄격제한 등 좌파 정책을 실현하고 있고, 여기에 감세와 금융규제를 주창, 좌파보다 더 효율적으로 좌파 이념들을 전달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르코지 대통령은 금융회사의 보너스 규제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인물이고, 최근 G20 정상회담에서는 토빈세(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 도입까지 요구한 바 있다.
반면 진보정당이 집권한 미국은 오히려 금융제재에 소극적이다. 유럽 우파를 미국이나 한국의 우파와 동일 선상에 놓고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권 2기에 들어선 메르켈 독일 총리도 자민당과의 보수연정을 추구하고 있지만, 미국이나 한국의 시각에서 보면 감세 공약을 제외하고는 우파 정책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은 많지 않다.
메르켈 총리의 기독교민주당(기민당)은 노동자 해고를 보다 쉽게 하자는 자민당의 공약에 동조하는 입장이 아니며, 이런 차이는 보수연정 구성 과정에서도 진통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이 추진하는 감세공약도 조세구조의 근본 변혁보다 세율을 낮추는 조정 정도이다. 유럽인들은 복지모델을 흔들면서까지 세금을 깎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무료로 병원과 보육시설을 이용하고, 등록금 없이 대학을 마칠 수 있는 유럽의 복지모델은 일부 하자에도 불구하고 가장 성공한 모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우파정권은 그 '일부 하자'를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지지를 받은 경우가 많다.
유럽에서 우파 승리를 바라보는 세계의 왜곡된 시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6년 스웨덴총선에서 12년 만에 중도우파연합이 승리했을 때 당시 한국에서는 참여정부의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 움직임에 대해 "실패한 유럽 좌파모델을 도입한다"는 보수진영의 비판이 집중됐던 적이 있다.
라르스 바리외 스웨덴 대사는 당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웨덴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당이라도 한국에서 정권을 잡으면 복지정책 확대를 위해 세금을 올릴 것"이라고 논란을 일축했었다.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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