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는 최근 새롭게 등장한 우리나라 음주 문화 중의 하나다. 시베리아 벌목꾼들이 처음 만들어냈다는 설도 있고 미국 부두 노동자들이 만들어냈다는 설도 있는데, 목적은 한 가지다. 최대한 빨리 취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빨리빨리'를 추구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성격에 딱 맞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나라 위스키 소비량의 80%가 폭탄주 제조에 쓰인다니 대단한 폭탄주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투자문화도 꼭 폭탄주 문화를 닮아가는 거 같아 너무 안타깝다. 국민 성격을 반영하듯, 언제나 빠른 투자 결과를 원한다. 단기간에 우리나라가 ▦파생상품 거래 세계 2위 ▦옵션 거래 1위에 등극한 것도 그 증거이다. 주식시장도 얼마나 단기수익을 추구하는지 테마 형성과 전파, 그리고 쇠퇴의 주기가 무척이나 빠르다.
한때 인기상품이었던 펀드에 대해서도 예외가 없다. 단기 성적이 좋지 못하자 당장 빼서 직접투자로 돌아설 정도로 '빨리빨리'를 추구한다.
문제는 속도를 추구하는 이런 국민성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게임 등 제조업 분야에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투자에 있어서는 거의 예외 없이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폭탄주가 빨리 취하는 대신 다음날 숙취가 남는 것처럼 빠른 투자 결과의 추구도 후유증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누가 보더라도 고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 같은 투자 대상에는 항상 꿈처럼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가면이 씌워져 있다. 미래의 에너지, 정보통신 혁명, 인류를 살릴 신약, 세력이 매집한 급등주, 제 2의 대박주, 대형 수주건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늘 꿈은 그대로 이뤄질 확률이 적고, 설사 이뤄진다 하더라도 이미 가격에 다 반영돼 있어 추가 소득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런 꿈이 투자자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리스크'를 간과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최근 연예인 관련 사건 기사들을 보면 그러지 않을 거 같은 사람이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있는데 원인을 따져보면 대부분 술 때문이다. 술이 이성을 마비시켜 자기 행동이 가져올 리스크를 계산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단기 대박에 대한 환상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온다. 3년 전 우리나라의 몇몇 내수 독점 종목을 아주 싼 가격에 사서 엄청난 수익률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팔지 않고 있던 미국 펀드매니저에게 '계속 장기 보유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대답은 '한국도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고, 그러면 자기네들이 투자한 회사들의 시장이 가만히 있어도 커지는 셈이니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때 이들의 진정한 힘은 자금의 '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금의 '길이'에서 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성공 투자에는 폭탄주 문화가 아니라 이들처럼 오랜 시간 한 모금씩 마시는 와인 문화가 더 어울려 보인다.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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