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민에게 현 시기는 최대의 위기 국면이다. 쌀 소비량은 급감하고 있고, 매년 작물 수급은 예측할 길이 없으며, 세계 각국과 잇따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시장은 무한 개방되고 있다. 대부분 고령인 농민들이 사회적 취약 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경고음도 들란다.
그러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시도도 끊이지 않고 있다. 1차 생산자의 틀을 과감히 벗고 '한식 외식 산업 진출을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이라는 꿈을 키워 가고 있는 강성채 전남 순천농협 조합장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를 29일 조합장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식 세계화야말로 농업에 새로운 한줄기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인들이 한식을 접하게 될 때 결국 한국 농산물이 최상급 식 자재로 소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천농협은 그때를 앉아서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다. 1997년 10월 1일 12개 지역 조합이 합병한 순천농협은 조합원이 1만7,194명이나 되는 전국 최대 규모의 도ㆍ농 복합형 조합이다. 20개 지점과 2개 지소에 남도식품 RPC 파머스마켓 APC 등 4개 사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8년 9월부터 배우 배용준과 손잡고 일본에 출시한 '고시레 김치'가 다른 김치보다 약 30% 비싼데도 잘 팔리는 걸 보면서 결국 혁신적 상품 개발과 유통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순천농협은 93년부터 남도식품을 통해 일본에 김치를 수출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조합원 생산품을 가공한 식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파머스마켓도 운영하고 있다. "2003년 12월 문을 연 이곳은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공간입니다. 주위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할인 마트가 3개나 입점해 있지만 한 해 매출만 250억원에 이를 정도로 성과를 내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순천농협은 학교 급식 유통과 친환경 농산물 체인점 사업 진출도 꾀하고 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이 있죠. 식량 안보와 먹거리의 안전성이 우선되는 21세기, 이 구호를 그냥 옛날 어른들 말씀이 아닌 우리의 꿈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첫 걸음은 우리 농산물로 만든 우리 먹거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될 겁니다."
순천= 김대성 기자
■ 이웅규 교수가 본 강성채 조합장
'농식품 유통의 고속도로를 뚫는 사람.'
강성채 순천농협 조합장은 스스로를 일러 이런 표현을 즐겨 쓴다. 그는 이 고속도로를 전 세계에 뚫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한식 세계화'라고 정의한다. 농대를 졸업하고 원예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농식품 유통 초고속도로 구축'이라는 제안서를 통해 이런 자신의 전략을 가다듬었다.
그는 또한 순천시를 세계적 친환경 농산물 산업 단지로 재편하겠다는 야심도 갖고 있다. 농업이야말로 이제 첨단화·현대화해야 한다는 그의 소신이 한국 농업의 새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세계한식요리경연축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백석대 교수
■ 시리즈를 마치며
한국일보의 '한식, 세계화를 디자인하라' 시리즈가 드디어 막을 내린다. 14일자 김순진 놀부NBG 회장의 얘기로 시작된 이번 시리즈는 30일자까지 모두 13회에 걸쳐 게재됐다.
그간 한국일보와 이웅규(백석대 호텔관광학과 교수) 세계한식요리경연축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은 하나의 작은 청사진을 완성해 보려 했다. 한식 세계화의 당위성과 시의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만 정작 그 방향과 전략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상태라는 판단에서다.
시리즈는 철저히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인물들을 위주로 구성됐다. 그간의 논의가 한식 세계화의 주역들을 배제한 소수 전문가와 행정 관료들이 벌이는 '그들만의 리그'로 꾸려져 왔다는 반성 때문이었다.
그렇게 14명의 주인공들을 만나면서 한식 세계화의 미래 전략이 조금씩 구체화했다. 한식의 세계화는 한때에 지나고 말 정권 차원의 이벤트가 아니며 근대화 이후 최대 피해자가 돼 온 한국 농민과 농업을 21세기 새로운 고부가가치 문화 산업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최상의 방법론이란 것이다. 전통문화의 총체적 향연이자 구현인 한식을 세계화할 때 우리 정신 문화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논의도 활발했다.
활발한 실천 방식도 소개됐다. 음식을 문화로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해 곁들여지는 모든 문화적 요소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시스템의 틀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와 이를 학제적인 연구를 통해 지원하고 있는 모습까지 우리 사회는 한식 세계화를 위해 한 걸음씩 발을 떼고 있었다.
국내에서 최초로 한식 세계화의 방향과 전략에 대해 진단해 본 이번 시리즈가 진정한 공론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 전문가 "지도층의 한식사랑 시급"
한국일보는 이웅규(백석대 호텔관광학과 교수) 세계한식요리경연축제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과 공동으로 8월 한 달간 전화 설문 방식으로 '한식 세계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현안'에 대한 전문가 설문 조사를 벌였다.
시리즈 인터뷰에 실린 14명과 식품 업체 대표, 관련 단체 대표, 관련 학과 교수, 관련 미디어 편집장 등 전문가 72명이 참여한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사회 지도층의 한식 사랑 운동'(64명)을 꼽았다.
다음은 '한국 음식의 정체성 확보'(57명)' 한식의 과학적 연구'(48명)' 한국 도자식기의 개발 지원'(47명)' 인력 양성에 대한 투자'(42명)'철저한 현지화 시도'(34명)' 외식 프랜차이즈 산업의 육성'(30명)' 기능인 및 농민 우대 사회 정책 추진'(27명) 등 순이었다. 이외에'농^어업인 소득과 연계할수있는식재료 개발'(15명)' 한식 재료 정보의 체계화'(11명)' 체계적 정부 정책 추진'(9명) 등도 과제로 제시됐다.
■ "정부·민간·기업 함께 세계 공략, 日食의 성공 신화에서 배워라"
미국과 유럽에서 일식은 고급 요리의 대명사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일식이 세계화에 성공하기까지 지난한 노력이 있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한식 세계화의 좋은 모델이자 극복 대상이 바로 일식 세계화라고 말한다.
정부 민간 기업의 세 주체가 힘을 모아 벌이고 있는 일식 세계화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전략과 세계 시장에 대한 발 빠른 대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일식 세계화의 콘트롤 타워는 일본 농림수산성의 외식산업실이다. 외식산업실은 일식의 해외 보급 추이와 새로운 상품군 개발 등 거대 전략을 담당한다.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일식 세계화를 직접 시행하고 있는 기관은 2007년 출범한 비영리기구 JRO(Organization to Promote Japanese Restaurants Abroad)다.
서울(2009년 3월 설립)과 영국 런던, 러시아 모스크바, 미국 뉴욕, 중국 상하이(上海), 태국 방콕 등 세계 10여 곳의 메가폴리스에 지부를 두고 일식의 고급 이미지 홍보 및 일식 식자재 보급에 주력하고 있다.
또 일식 문화 교본 배포 및 인력 육성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JRO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전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간장 회사 기코만의 모기 유자부로(茂木友三郞) 회장이다.
도움말=최인식 한국외식산업협회 상임회장·군산횟집 대표
김대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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