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화회관에서 '나방 혹은 공중보행자'라는 제목의 한 청년의 시집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우리 큰애와 나이를 비교해보았다. 갓 스무 살, 큰애보다 겨우 네 살 위다. 저자 한고운의 얼굴이 책날개에 박혀 있다. 검은 뿔테 안경으로 멋을 낸 귀염상스런 얼굴, 그런데 시집을 건네는 이도 받는 이도 기뻐할 수 없었다. 시인이 되고자 했던 이 청년은 지난 7월 22일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김경민 선생은 제자를 잃은 아픔과 아쉬움을 한 권의 시집에 담아냈다. 7월 22일엔 일식이 있었다. 일식 안경을 찾느라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마지막으로 해를 본 건 중앙고속국도 위의 한 휴게소였다. 거짓말처럼 일식은 끝나 있었다. 여든 가까이 된 시아버님이 입원한 병원으로 가던 길이었다. 링거 바늘을 꽂은 아버님은 이제 세 살 된 손자가 중학교 입학할 때까지는 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바로 그날 저녁 세상을 떠난 청년과 침상에 힘없이 누워 있던 아버님의 모습이 교차되었다.
일식처럼 겹쳐지는 삶과 죽음. 한고운의 유고 시집을 읽는다. 푸르디푸른 청년의 삶 속 깊이 잠식한 우울한 기질도 문득문득 드러난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도 이른 죽음에 마음이 쓰라리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어쩌면 신종플루의 위협보다 더 큰 재앙일는지도 모른다. 일식이 있던 날, 그의 삶도 달에 가리어졌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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