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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칼럼] 이념과 당파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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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칼럼] 이념과 당파 싸움

입력
2009.09.30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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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특히 노무현 정부 들어서부터 이념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나는 우리 정치에 존재하는 갈등의 실체는 이념 갈등이 아니라는 주장을 시종일관 펼쳐왔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이념 갈등이라고 불리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갈등의 원인이 당사자의 이념이 아니라 당파 이익에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한국 정치세력들 사이의 이념 격차가 미소(微小)하다는 데서 잘 나타난다.

정치세력 이념 격차 적어

김대중 정부가 '생산적 복지'를 내세웠지만 결국 신자유주의로 기울었고, 노무현 정부 역시 호쾌한 개혁 정책을 펼치는가 했으나 얼마 안 가 신자유주의적 으로 돌아섰다. 사회ㆍ경제 정책으로 볼 때 노무현 정부는 좌파이기는커녕 오히려 우파에 가까웠다. 그 정부가 내세운 각종 사회ㆍ정치 개혁들, 이를테면 지역주의 타파, 권위주의 타파, 과거사 밝히기, 사학법 개정 등은 좌우 이념과는 상관 없이 오히려 진정한 우파라면 앞장서 추진해야 할 정책들이었다.

좌우파를 굳이 나누겠다면 북한과 미국에 대한 태도에서 볼 수 있는데, 북한에 비교적 유화적이었던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전쟁의 상처를 안은 보수 우파들이 용납할 수 없었던 점은 이해한다. 그런 점에서 좌우파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미국에 대해 좀 더 자주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은 오히려 우파라면 마땅히 추진해야 할 정책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우파는 진정한 우파이고, 한국의 우파는 사대주의적인 사이비 우파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진정한 좌파 정치세력은 극히 미약하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좌파라고 할 수 있지만, 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이 역시 중도좌파 정도에 불과하다. 단지 한국의 이념 좌표가 워낙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어 이들이 '극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든 한국의 기준으로 수정된 좌우파를 굳이 나누려면 나눌 수도 있다. 김용갑 전 의원이 보면 이명박 대통령도 좌파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는 진정한 이념 격차도 없고 진정한 이념 갈등도 없다. '좌파'노무현 정부가 결국 중도 우파로 드러났고, 취임 초 극보수ㆍ 순정 신자유주의를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 역시 '중도실용'을 내세우면서 중도 우파로 방향을 틀었다. 물론 뒤의 중도 우파가 앞의 중도 우파보다 조금 더 오른쪽에 있는 것은 사실이겠다. 중중도 우파와 중도 우우파의 차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이념 격차가 없다 보니 한국 정치는 결국 중도 우파로 수렴되게 되고, 그 결과 정치 싸움은 결국 당파 싸움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에 사색(四色) 당파들이 주자학의 고매한 이론을 내세웠지만 결국 당파 싸움으로 지새웠던 역사가 되풀이된다. 세종시 문제로 각 정파들이 계속 떠드는 것도 무슨 고매한 이념이 아니라 당파 이익 때문이요, 민주당이 용산 참사에는 비교적 무관심하면서 미디어법 개정 저지에 목숨을 거는 것 역시 자신의 당파 이익에 더 직결되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당파 이익 싸움

'3김 정치'가 사라지자 한국 정당들의 뼈대와 바탕이 더 허약해졌다. 지역 보스라는 구심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공백을 제도화된 정당 정치가 메워야 하는데 아직 그런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정당은 지리멸렬하고 일정한 원칙과 이념도 없이 그때그때 이익에 따라 벌거숭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민주주의의 타협 과정을 아직도 숙지하지 못한 수준 낮은 정치인들 때문에 혼란은 가중된다.

'이념 갈등'은 '좌파'들의 위협에 대한 '우파'들의 과민 반응으로 과장된 것이다. 나는 우리 정치에서 진정한 이념 격차를 보고 싶다.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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