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A초등학교 후문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차선 없는 비좁은 이면도로에서 삼삼오오 교문을 나선 하굣길 학생들과 양방향으로 오가는 차량들이 위태롭게 뒤섞였다. 큰길까지 100m쯤 이어진 도로엔 스쿨존 표지판과 과속방지턱이 있었지만 차도와 구분되는 인도는 없었다.
그나마 한쪽 길가에는 노면 주차장이 설치돼 보행을 방해했다. 차가 올 때마다 아이들은 한 켠으로 아슬아슬 비켜섰고, 큰 트럭이 올 때는 아예 주차 차량 틈새로 숨어들어야 했다. 지켜보던 한 상인은 "익숙해질 법도 한데 언제나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가 빠르게 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국 스쿨존에서 어린이(만 12세 이하) 교통사고가 385건 발생해 3명이 죽고 405명이 다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사고 건수는 23.4%(73건), 부상자는 20.9%(70명) 증가했다. 올해 만의 현상이 아니다.
스쿨존 교통사고는 2006년 1,120건, 2007년 1,258건, 지난해 2,113건으로 급증하고 있고, 어린이 사상자도 2006년 347명에서 지난해 604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사고가 증가하는 상황에 대해 경찰은 "스쿨존 지정 구역 확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설명했다. 실제 경찰이 2003년부터 스쿨존 개선사업에 나서면서 스쿨존 수는 2007년 8,429곳에서 이달 9,310곳으로 늘었다. 하지만 스쿨존 증가 비율보다 사고 증가 비율이 훨씬 크다는 점에서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안전시설 미비를 스쿨존 사고 급증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스쿨존엔 도로 표지, 횡단보도 및 신호기 외에 도로반사경, 과속방지턱, 미끄럼방지시설, 안전 울타리 등을 설치하게 돼있다. 하지만 A초등학교처럼 인도는커녕 보행로와 차도의 분리 시설도 갖추지 않은 경우가 많다.
최근 강북구 B초등학교 스쿨존에선 문구점 앞 인도에 설치된 전자오락기에서 게임을 하던 초등생이 차도를 벗어난 트럭에 치어 숨지기도 했다. 인도가 따로 없을 경우 보행로 확보를 위해 노면 주차장 설치를 금지하고 있지만 A초등학교의 사례처럼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통학로 안전 확보'라는 목적에 비추어 실효성 없는 스쿨존 운영도 문제다. 차량통행이 많은 경우 등ㆍ하교 시간에 차량통행을 제한할 수 있게 돼있지만 이를 시행하는 스쿨존은 거의 없다.
지난 6월 초등생 김모(12)군이 버스에 치어 숨진 강동구 C초등학교 스쿨존은 왕복 2차선 도로인데도 버스 8~9개 노선이 오갈 만큼 교통량이 많은 곳이라 사고 위험이 상존했지만 차량 통행량에 대한 별도의 조치는 없었다. 이 학교 학생 이동일(10)군은 "건너편 인도가 가깝다 보니 무단횡단을 할 때가 많은데 그러려면 버스를 요리조리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쿨존에 위험 요소가 방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17일 경기 성남구 D초등학교 앞 스쿨존에선 인근 공사장을 오가던 덤프트럭이 길가던 여고생 2명을 들이받아 1명이 사망하고 1명은 중태에 빠졌다.
서울 광진구 D초등학교 재학생을 둔 한 학부모는 "스쿨존에 이삿짐센터와 렌터카회사가 있어서 차량이 수시로 오가는데 구청이 왜 조치를 취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분개했다.
운전자 안전 의식도 어린이들을 위협하고 있다. 제한속도 30㎞와 주ㆍ정차 금지 규정은 있지만 지키는 사람이 드물다. 택시기사 임모(53)씨는 "강남 지역을 제외하면 폐쇄회로(CC)TV나 과속 단속카메라가 설치된 스쿨존이 거의 없어 다들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허억 어린이안전학교 대표는 "스쿨존에 진입하면 서행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운전자가 의외로 많다"며 "어린이뿐 아니라 운전자 안전 교육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