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수(秀)의 '나생문(羅生門)'은 2003년 이래 1, 2년마다 한번씩 이 극단이 무대에 올려온 작품이다. 일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덤불속'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충분히 알려졌다고 할 만한 이 작품에, 극단 수 대표이자 연출가 구태환씨는 다섯번째로 도전하고 있다.
"화자에 따라 사건의 내용 자체가 달라지는, 부조리극적 가능성은 여전히 매력이에요. 관점에 따라 무속을 그린 작품도, 코미디도 되죠." 바로 그 가능성 때문에 구씨는 연출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세계적 걸작의 반열에까지 오른 텍스트의 열린 구조에서 많은 가능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억수처럼 비 내리던 밤, 산적이 사무라이를 죽이고 그의 부인을 겁탈한 과거의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세 남자와 그들 의식의 내면을 그린 공연이다. 죽은 자는 자기가 아는 이야기만을 되풀이하며, 산 자들의 입은 제각각이다. 화자에 따라 사건의 골격은 달라진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이 극이 던지는 물음이다.
무대는 우선 감각의 성찬이라 할 만하다. 무대 뒤편에 빽빽이 들어선 푸른 대나무와 물소리, 새소리 등 시청각 기호는 무대 안쪽에서 실시간으로 들려주는 각종 타악기들의 연주와 어우러져 극의 흐름을 더욱 긴박하게 한다. 산적과 무사인 남편 사이를 오가며 은근히 욕망을 채우는 부인의 연기는 무대를 더욱 감각화시킨다.
2003년 극단 창단 기념공연작으로 이 작품을 택했던 연출가 구씨는 이번 무대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그는 "명작이란 계속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며 "앞으로는 큰 극장에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극장 여건만 좋다면 충분히 더 감각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다. "나생문을 훨씬 더 높게 지어 이야기 공간을 확장하고 싶어요." 그가 꼽는 재상연의 가능성 중 하나이다. 11월 1일까지,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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