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로얄씨어터가 먼저 화두를 잡았다. 로얄씨어터의 '유럽 현대 연극 프로젝트'는 영어권 텍스트에서는 맛보기 힘든 진지함에다 특유의 유머 등으로 구축된 유럽의 정극 10편을 잇달아 상연한다.
개막 테이프를 끊은 작품은 탕크레트 도르스트의 '나, 포이어바흐'. 7년 동안 정신병원 신세를 지고 막 퇴원한 왕년의 명배우가 주인공이다.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 그에 따른 인간의 좌절을 그린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무대로 복귀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집념을 갖는다. 1986년 초연 이래 유럽 극장을 순회하고 있는 화제작이다.
역자 김관우씨는 "금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의 난해한 작품이지만, 문학 연구자들에게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무대"라며 강한 기대를 표했다. 자신의 작품이 한국에서 상연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원작자는 공연의 성공을 기원하기도 했다. 10월 14일까지 엘림홀. 화~금 오후 8시, 토 3시 7시, 일 6시.
이어 올려지는 프랑스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 원작의 3인극 '불쏘시개'는 전쟁 중 모든 물자가 끊긴 상황에서 교수, 조교, 조교의 여자친구 3명이 보여주는 생활의 풍경으로 위기에 처한 인문학을 적절히 은유한다. 이 무대는 로얄씨어터가 11월말께 캐스팅을 시작, 연말이나 내년초에 무대화할 계획이다.
계속되는 유럽 연극은 사람들의 정신을 잠 못들게 한다. 독일 현대 희곡 작가 페터 투리니가 지은 '요셉과 마리아'에는 냉소와 독설의 색채가 더 강하다. 작가는 소외된 노인들의 독백과 고독에서 현대사회의 냉정함을 그린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작품이다.
현대의 고전인 제임스 조이스의 '망명자들'도 공연된다. 조국을 떠나 로마에서 궁핍한 생활을 거쳐 성공한 예술가로 귀국하는 주인공이 겪는 의식의 세계를 그린다. 무대는 이후지 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의 번역본으로 원작 특유의 난해함을 누그러뜨리려 한다. 조이스가 입센을 문학의 사표로 삼고 집필한 작품으로 후기 입센극의 특징, 즉 명확하게 정해진 형식을 중시하는 무대로 조이스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해롤드 핀터의 '생일 파티'는 작가 특유의 부조리극적 설정이 객석을 긴장시킨다. 조용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끔직한 살인, 평범한 인간들의 섬뜩한 웃음 뒤에 난무하는 언어 폭력, 고문이 난무하는 내용이지만 '핀터 페스티벌'이 열릴 만큼 작가의 마니아층이 두터운 국내에서 호응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 미래의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린 하라트 뮐러의 '시체들의 뗏목', 현대인의 일상을 곡마단원의 그것으로 은유한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습관의 힘' 등은 잊고 있던 우리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02) 358-5449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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