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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드라마 선덕여왕과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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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드라마 선덕여왕과 박근혜

입력
2009.09.30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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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바람이 거세다. 시청률이 42~43%로, 두 집에 한 집은 이 드라마를 본다. 한국일보 한 논설위원의 딸들은 화요일 밤 '선덕여왕'을 보고 나면 "이제 일주일을 무슨 낙으로 보내느냐"고 투정을 부린다고 한다. 하긴 내 아내도 내가 늦게 귀가해 한 회 정도 안보고 건너뛰려고 하면 꼭 녹화를 해놓고 보라고 한다.

여성들만 그런 게 아니고 남성들도 사극에는 곧잘 빠진다. 음모와 술수가 판을 치고, 그 와중에서도 명분과 정의를 추구하는 의로운 세력이 존재하는 극적인 구도가 눈길을 잡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도 그렇다. 미실이라는 강하지만 의롭지 못한 권력자가 있고, 약하지만 의로운 덕만공주가 그 벽을 넘어 선덕여왕이 되는 구도는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다.

더욱이 사극은 과거에 있었던 사실(史實)을 다룬다는 점에서 사실(事實)적 의미를 부여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갈등, 위기, 좌절과 극복 그리고 대업의 성취는 시청자들에게 단순히 재미만을 주는 게 아니라 재연될 수 있는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특히 우리 정치구도와 유사하게 맞물리면서 현재적 의미로 투영되고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선덕여왕이 오버랩 되고 있다. 둘 다 여성이고 독신이며 나름 곡절을 겪은 뒤 정치판에 뛰어들어 정상을 향해 달려간다는 점이 희한하게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선덕여왕은 대업을 성취했고 박 전 대표는 도전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박 전 대표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다. 이미 고대에 여성군주가 있었고, 그가 삼국통일의 초석을 다졌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여성 지도자에 대한 불안감을 부지불식간에 희석시킬 수 있다. 덤으로 시청자들의 의식 저 밑바닥에 덕만공주가 보여주는 인내력, 백성을 향한 애정, 리더십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총괄하는 MBC 이창섭PD에 물었다. "정치적 고려를 하느냐"고. 이PD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오로지 제대로 된 사극을 만들자, 한류를 이어가자, 이런 점을 고민할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드라마 '선덕여왕'이 정치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점은 MBC 사람들도 인정하고, 박 전 대표의 측근들도 인정한다. '기업인 이명박'의 인생역정을 극적으로 다룬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1990~91년 방영)이 이 대통령의 정치적 성장에 크게 도움을 주었듯이 '선덕여왕'도 훗날 여러 평가를 낳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불공정성 시비는 제기되지 않고 있다. 대선은 아직 멀고, MBC가 특정인을 밀어야 할 이유도, 의도도 없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드라마가 끝난 뒤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이 바뀌어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어찌 여자가 나라를…"이라는 식의 논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 박 전 대표를 제외하면 여야의 잠재적 대권주자들 대부분이 남성이다. 남성 주자들은 지금도 박 전 대표의 지지도에 미치지 못하는데 이런 통념까지 바뀐다면 상당히 벅찬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관전자의 입장에서는 재미도 있고, 대권주자들을 더욱 열심히 뛰게 하는 박빙의 접전이 더 보고 싶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면서 남성 주자들의 분발을 기대해보는 가벼운 상념을 해본다.

이영성 부국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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