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손바닥 만한 광고 스티커였다. 가슴을 훤히 드러낸 젊은 여성의 사진과 전화번호가 담긴 스티커들이 전철 역 계단 난간이나 기둥, 공중전화 부스에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다음은 신문에 끼여 배달되거나 우편함에 투입된 전단지였다. 남녀가 사교춤을 추는 조악한 삽화와 함께 '발렌타인 서비스'나 '에스코트 서비스'라는 글자가 전화번호와 함께 찍혀 있었다. 한꺼번에 10여명의 반라 여성의 선명한 천연색 사진이 담긴 고급형 전단지를 보고서야 '출장 서비스' 광고임을 알았다.
아들 둔 부모의 새로운 걱정거리
10여년 전 일본에서 생활하며 가장 크게 놀랐던 일이다. 아이들이 볼까 봐 급히 쓰레기 봉투에 쑤셔 넣었지만 나중에 그보다 더한 만화나 잡지 등이 편의점이나 서점, 심지어 공공도서관에까지 수북한 사실을 알고는 그만 맥이 풀렸다. 도쿄에서 아이들을 키우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과 함께 서울은 그에 비하면 아직 양반이라는 위안을 느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서울에서도 비슷한 광고 스티커와 자주 만난다. 주로 유흥가의 전봇대 등에 많이 붙어 있지만 전철역 계단 턱에 줄지어 붙은 것을 볼 때도 있다. 이메일과 휴대폰으로도 쏟아져 들어오는 망측한 광고까지 포함하면 이제 서울에서 아이 키우기가 도쿄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다.
강남 일대에 돌고 있다는 소문을 접하고는 오히려 더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중고생 아들을 둔 부모는 아들이 집으로 매매춘 여성을 불러 들이거나 부모 자동차를 한강 둔치 등으로 끌고 나가 그리로 부를까 봐 함부로 집을 비우고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처음에는 귀가 의심스러웠지만 지난해 강남 한 고등학교의 중국 수학여행에서 터진 현지 매매춘 사건이 떠오르자 그 개연성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5년 전 '성매매 특별법' 시행 당시 집창촌 단속이 부를 '풍선 효과'에 대한 우려가 무성했다. 근거지를 잃은 종사자들이 흩어져 유흥가나 오피스텔 등으로 파고 들고, '공급 부족'을 메우기 위한 신종 또는 변형 매매춘 업소가 창궐하리라는 당시의 예상은 이내 현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변형'이든, '신종'이든 업소에서의 행위는 특정 공간에 묶여 있다는 점에서 단속 의지만 확고하다면 특별히 문제가 될 수 없다.
반면 청소년 고객까지도 가리지 않는 출장 영업은 심각한 폐해에도 불구하고 단속의 손길이 미치기 어렵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출장 영업의 성행을 곧바로 '성매매 특별법'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다른 모든 업종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마주할 일이었다. 그러나 생물 진화가 환경변화에 따른 자연선택의 결과이듯, '성매매 특별법' 시행이라는 커다란 환경변화가 매매춘의 진화를 자극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애초에 '성매매 특별법'에 공감하지 않았다. 매매춘의 만연은 사회의 윤리적 건전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르게 마련인 업주의 횡포나 인신매매는 직접적 인권 침해다. 그러나 매매춘 자체를 제외한 나머지 부당한 침해는 형법을 비롯한 기존의 다른 법률을 적용해도 충분했다. 또 매매춘을 완전히 뿌리뽑겠다는 발상 자체가 지나친 이상론이다. 매매춘은 유사 이래, 아니 보노보 원숭이의 행태에서 보듯 인간 종으로의 진화 이전 단계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뿌리가 깊다.
집창촌 쇠락, 집단위선만 충족해
실제로 '성매매 특별법'시행 이후 집창촌은 쇠락했지만, 한국사회의 성윤리 가 바로 서거나 매매춘 자체가 줄어들지 않았다. 눈에 잘 띄는 집창촌의 역할을 변형 매매춘 업소가 대신하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보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사회적 위선의 실체를 보는 듯하다.
'성매매 특별법'은 여성계의 요구를 수용한 여성 의원들이 앞장서서 만들었다. 시행 5년이 넘어도 성과가 없다면 근본적 재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법의 성격상 아내들의 눈길이 무서워서라도 남성들이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결자해지라는 말처럼, 여성 정치인들이 나서야 할 때가 됐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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