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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도(大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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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도(大盜)' 유감

입력
2009.09.2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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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비도크(Franois Eugene Vidocqㆍ1775~1857)의 인생은 흥미롭다. 빵집 아들로 태어나 14세에 도박-결투-살인으로 투옥된 후, 절도 위조 인신매매 등 거의 모든 범죄를 섭렵했다. 가장 잦았던 범죄가 탈옥이었는데 약 20년 동안 50회 이상의 기록을 세웠다. 감옥에서 굶주린 자식에게 주려고 빵을 훔쳤다가 6년형을 선고 받은 불쌍한 농민을 만나 마음을 고쳐먹고, 다른 죄수가 자랑으로 얘기한 범죄사실을 밀고해 경찰의 내부자가 된다. 그 뒤 범죄 소탕에 나서 근대 과학수사의 원조인 파리 수사국(쉬르테)을 창설, 초대 책임자가 된다.

▦그의 경험 중 하나를 소개한 것이 근대 추리소설의 효시라는 <모르그가의 살인(에드거 앨런 포ㆍ1841)> 이다. <레 미제라블(빅토르 위고ㆍ1862)> 의 주인공 장발장이나 그를 쫓는 형사 자베르의 모델은 둘 다 비도크의 삶에서 가져왔다. 비슷한 시기 <셜록 홈스(코난 도일)> 시리즈가 영국에서 인기를 끌자 프랑스 한 잡지사에서 대항마로 <괴도 뤼팽(모리스 르블랑)> 을 만들었다. 홈스가 비도크의 형사시절의 활약상을, 뤼팽은 신출귀몰했던 그의 범죄행각을 픽션을 섞어 재연해 놓았다. 변장술의 천재라는 명성을 인생으로 확인시킨 '대도'였다.

▦100년 뒤 애버네일(Frank Abagnaleㆍ1948~ )이라는 인물이 나왔다. 미국에서 17세 때부터 위조수표를 제작, 250만 달러를 뿌려대 1960년대 FBI 최연소 지명수배자로 등록됐다. 파일럿 의사 변호사 교수의 자격증을 위조해 활동했던 그는 체포된 후 FBI를 위해 수표 위조방지 프로그램과 보안컨설팅을 개발해 백만장자가 됐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2003)> 의 모델인 그는 "모든 범죄자들이 그렇듯 언젠가는 잡히게 돼 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만 그것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그도 '대도'다.

▦홍길동이나 임꺽정, 러시아의 스텐카 라진 등을'의적(義賊)'이라 하듯, '대도'라는 표현에도 긍정적인 뉘앙스가 들어 있다. 그런 정도의 반열에 오르려면 최소한 치열한 자기 변신을 통해 실수를 고칠 수 있음을 삶으로 보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 주변에도 예전부터 '대도'라 불린 몇 명의 큰 범죄자가 있었으나 그들은 한결같이 다시 도둑의 길로 돌아갔다. 엊그제 많은 부잣집을 털었다는 떼도둑을 언론이 또 '대도'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늘리느라 수단을 크게 잡은 것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오해할까 걱정이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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