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32)씨는 최근 옆자리에 앉은 여자팀장 때문에 깜짝 놀랐다. 출산휴가를 갔다 얼마 전 복귀한 팀장이 노트북을 통해 CC(폐쇄회로)TV 화면을 몰래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수시로 회의자료 창 위로 띄워보는 CCTV 화면으로는 아장아장 기어 다니는 아기와 아기를 돌보는 50대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팀장은 연유를 묻는 김씨에게 "재중동포인 보모가 혼자서 아기를 돌보는 게 영 불안해 집안에 CCTV를 설치했다"고 소곤거리며, 회사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미혼인 김씨는 "평소 업무에 깐깐하기로 소문난 팀장이 회의 시간에까지 아기 걱정을 하는 모습이 태만해 보이기는커녕 딱하고 가여워 보였다"고 말했다.
베이비시터에게 맡긴 아이의 안녕을 확인하기 위해 집안에 CCTV를 설치하는 직장여성들이 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아이가 보모에게 학대 당했다', '중국인 보모가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퍼지면서, 바쁜 업무 중에 베이비시터의 감시자(watchdog) 역할까지 하고 있는, 슬픈 '워치맘(watch-mom)'의 초상이다.
과외교사 임모(30)씨는 올 1월 약 50만원을 들여 집안에 CCTV를 달았다.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두 살배기 딸을 한국인 보모에게 맡기는 그는 첫 번째 보모가 갑작스럽게 그만두는 바람에 적응기간도 없이 두 번째 보모를 집에 들이게 됐다. 처음 CCTV 얘기를 꺼내자 보모의 얼굴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임씨가 일하는 엄마의 불안한 마음을 양해해 달라고 부탁하자 흔쾌히 오케이 했다.
"아이 떼놓고 나가 일하려면 걱정도 많이 되고 늘 마음이 무겁죠. 그럴 때 CCTV로 놀고 있는 아이 모습이 눈에 보이면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어요. 가끔 카메라에 대고 '엄마, 안녕'도 하는데, 커피 타임에 잠깐 보는 거라도 마음에 큰 위안이 돼요."
임씨는 "아기가 다치거나 하는 사고가 있으면 무작정 이모님(보모)을 의심하기 쉬운데, CCTV 화면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등 분쟁의 소지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직장맘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근 직장맘들 사이에서 CCTV 구비는 어린이집의 중요한 평가 요소로 부상했다. '맘스홀릭' 등 인터넷 육아카페에선 어린이집의 CCTV 설치 의무화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주기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IPTV로 아이들의 생활 모습을 생중계해주는 서울 방화동 한성어린이집에 딸 나영(4)이를 맡기는 간호사 문성순(33)씨는 틈이 날 때마다 어린이집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애가 아플 때 맡겨 놓고 나오면 마음이 천근만근이죠. 직장에 나와도 내 새끼 잘 있나 불안한 마음뿐이고…. 그럴 때는 전화로 백 번 잘 있다고 말해주는 것보다 눈으로 한번 직접 보는 게 훨씬 더 마음이 놓여요."
워치맘들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보육인력에 대한 인권침해이자 상호불신을 조장하는 지나친 처사라는 비판도 있다. 직장맘 장모(33)씨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도 힘든데 출근해서까지 베이비시터를 감시하느라 CCTV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면 얼마나 힘들고 심적으로 지치겠냐"며 "일단 사람을 채용했으면 믿고 맡기는 게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CCTV 무용론도 나온다. 보모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면 아이의 행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돼 있다는 것. 두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 현모(35)씨는 "CCTV보다 좋은 감시자는 바로 아이"라면서 "아이가 보모를 보고 반가워하거나 안기려고 하는 등 애착반응을 보이지 않고 칭얼거린다면 주양육자로부터 충분한 애정을 못 받고 있다는 뜻이니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모들로선 워치맘의 '빅브라더'같은 시선이 유쾌할 리 없다. 자기집이라도'몰래카메라' 설치는 법의 저촉을 받게 돼 보모의 동의는 필수지만, CCTV를 달겠다고 하면 '나를 그렇게 못 믿느냐'며 화를 내거나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않다.
파인드CCTV의 장석만 차장은 "최근 저가장비 개발로 가정용 CCTV의 가격이 대폭 낮아져 보모를 둔 가정집 중심으로 설치 의뢰가 두 배 이상 늘었지만, 기분 나빠하는 보모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문의가 이뤄진다"고 귀띔했다.
육아정책개발센터의 서문희 기획조정연구실장은 "부모들의 요구와 거기서 수익을 창출하려는 시장이 만들어낸 가정 내 CCTV설치는 옳고 그르고의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라며 "일을 하시는 분의 인권과 아동의 인권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적정선에서 합의점을 찾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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