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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호모 디지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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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호모 디지쿠스

입력
2009.09.2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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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가까운 시각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운전 중 전면창이 김으로 부예졌다고 했다. 창을 열어도 소용이 없어 급한 김에 차를 길가에 세운 모양이었다. 갑자기 시야가 하얘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마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의 한 장면 같았다며 웃었다. 왜 자동차 매뉴얼을 읽지 않느냐고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슬리퍼를 꿰어 신었다. 나 또한 김서림 방지 버튼의 위치가 떠오르지 않았다.

동생이 운전을 한 지 이제 일 년, 일교차가 커지는 작년 이맘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듯하다. 차종이 같다는 이유로 여간 귀찮게 하는 게 아니다. 이것저것 눌러보던 동생이 드디어 그 버튼을 찾아냈는지 잠시 뒤 보인다, 라는 함성이 들려왔다. 이젠 매뉴얼도 소홀히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여름에는 새로 산 휴대폰의 매뉴얼을 읽었다. 두툼한 소책자를 꼼꼼히 읽고 실전으로 옮겨보았다.

그런데도 메시지를 보낼 때면 여느 때보다 몇 배나 시간이 걸린다. 휴대폰 동작음 제거는 어떻게 하더라, 며칠 전 휴대폰을 잡고 끙끙댈 때였다. 큰애가 다가와 무심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그냥 한두 번 만졌을 뿐인데 기능이 바뀌었다. 늘 그랬다. 컴퓨터에서 디지털카메라까지 그애들은 금방 작동법을 알아낸다. 매뉴얼이 머릿속에 입력된 듯하다. 아무래도 그애들을 호모 디지쿠스라 불러야 할까보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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