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요즘 참 잘 나간다. 올해 개봉하는 영화만 2편에, 대작 TV드라마까지 방영을 기다리고 있다. 질적으로도 참 실하다. 8월 개봉한 할리우드 진출작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은 국내에서만 256만 관객이 관람했다. 어디 이병헌에게 슬럼프 기간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제2전성기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병헌은 신작 '나는 비와 함께 간다'(10월 15일)로 다시 영화 팬들과 만난다. 10월 8일 개막하는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될 이 영화는 예매 개시 38초 만에 매진되는 기록을 세워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1990년대 '그린 파파야 향기'와 '씨클로'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던 베트남계 프랑스인 트란 안 홍 감독이 지휘했다. 이병헌은 '진주만'으로 스타덤에 오른 할리우드의 별 조쉬 하트넷, 일본 열도의 큰 별 기무라 다쿠야(木村拓哉)와 연기 호흡을 맞췄다. 겉피만으로도 영화 팬들의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 이 조합에서 그는 홍콩 암흑가의 두목 수동포로 나온다. 대부호의 실종된 아들 시타오(기무라 다쿠야)를 찾아나선 전직 형사 클라인(조쉬 하트넷), 시타오 등과 운명의 대척점을 이루는 역이다.
지난해 최고의 화제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지.아이.조'에 이은 악역이다. 그는 "우연의 일치였으나 악인의 감정을 이어갈 수 있어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다"고 했다. "내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악의 모습을 늘상 끄집어 내 생각하고 그 느낌을 유지하려 했다"고 그는 말했다.
개봉은 '지.아이.조'가 빨랐으나 촬영시기는 '나는 비와 함께 간다'가 앞선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가 이병헌에게는 사실상 첫 해외 진출작인 셈이다. 그의 출연은 한국을 찾은 트란 안 홍 감독의 제의로 이뤄졌다. 트란 안 홍 감독은 "'달콤한 인생'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배역을 골라 연기해도 좋다"며 강한 호의를 보였다.
"12개국에서 온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여 찍은 영화"다 보니 언어는 큰 장벽이었다. 이병헌은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당연히 느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바짝 긴장을 했어도 연기에 몰입할라치면 어느 순간 "다시 하고 싶어요"라는 한국말이 불쑥 튀어나와 주위를 썰렁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기본적인 생활 대화가 되니까 나도 모르게 영어에 느슨해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장에서 처음 만난) 하트넷은 이웃집 청년처럼 소탈하고 서글서글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기억했다. "하트넷이 심하게 반가운 척 했다. 알고 보니 이 친구가 숙소에서 '달콤한 인생'을 보다 나왔더라. '영화는 끊어서 보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보는 것'이라며 말을 텄다."
김태희, 정준호, 김승우, 김소연, 그룹 빅뱅의 T.O.P 등 쟁쟁한 배우들이 집합한 TV드라마 '아이리스'의 출연도 눈길을 끈다. 10월 14일 KBS2에서 첫 전파를 탈 '아이리스'는 최정예 첩보원들의 활약과 사랑을 다룬다. 2003년 '올인' 이후 6년 만에 안방에 복귀하는 이병헌은 "나라의 버림을 받고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해 해적처럼 떠돌다가 대한민국에 복수하려는 전 첩보원"을 연기한다. 그는 "영화 20편을 찍는 기분이다. 파김치가 될 정도로 온 정신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의 물꼬를 텄지만 그는 여전히 "나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국배우"라고 강조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한국어로 한국 문화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좋은 과정을 밟으면 좋은 기회가 오리라 생각했다. '지.아이.조' 출연은 도박이었지만 한국 팬들이 좋게 평가해 깜짝 놀랐다. 하지만 해외에서 찍은 두 작품은 이제 지나간 과거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일하다 또 좋은 기회가 생겼을 때 해외작업에 참여하면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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