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내린 높은 하늘, 가을 기운 맑아
빈 산 고독한 밤, 나그네 마음 놀라라
등잔 쓸쓸한 외로운 돛배의 숙소
초승달 걸린 저녁에 다듬이 소리
남녘 국화를 재회하고 병으로 누웠는데
북쪽 편지는 오지 않나니 기러기 무정해라
처마밑 거닐며 견우 북두를 바라본다
은하수는 멀리 봉성에 닿았으리
● 두보의 칠언율시 가운데 하나이다. 이 우수에 가득찬 시를 읽으며 두보의 전기를 들여다 보니 과연!, 그의 우수는 그냥 나온게 아니다. 청년시절, 벼슬을 꿈꾸는 서생으로, 인생의 후반은 전란을 피하여 가솔들을 이끌고 중국 서남지방 일대를 떠돌아 다니면서 그의 우수는 쌓여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외로운 돛배의 숙소', '남녘 국화를 재회하고 병으로' 누운 두보는 그리도 북쪽에서 오는 편지를 기다렸나 보다. 가을밤, 타향을 떠도는 한 인간의 심사는 중세에도 근대에도 그리고 현대에도 달라지지 않아서 마음은 흔들리고 안개같은 우수에 젖어드는데.
꼭이 기다릴 그 무엇이 있는 게 아니라 다만 마음은 기다리는 그 무엇을 항상 가지고 있는 거라서 가을밤이면 별은 더 차갑고 또렷하다. 타국에서 고향에 두고 온 벗들을 그려본다. 우수는 떠도는 영혼을 감싸주는 물기 같은 것, 오늘도 밤하늘에는 두보의 기러기 같은 비행기가 날고 두보의 우수는 세월을 넘어 우리의 가을을 안아준다.
허수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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