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피부색이 결국 문제가 될 모양이다. 지난주 미국에서 열린 여러 굵직한 국제회의 때문에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조 윌슨 공화당 하원의원의 "거짓말이야" 고함 소동은 새 정부 출범의 감격과 함께 잠시 잊혀졌던 흑백 갈등을 미국 사회에 다시 각인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언론은 내년 11월의 의회 중간선거전이 이미 시작됐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민주ㆍ 공화당의 싸움 양상으로 보면 오바마의 피부색은 선거가 다가올 수록 정치판을 격랑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짙다.
거세지는 보수파의 인종공세
공화당은 보수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흑인 오바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는 이달 초 워싱턴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 입증됐다. 보수파 시위대들은 윌슨이 고함친 '거짓말'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내걸고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을 반대하는 행진을 했다.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도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동물원에는 아프리카 사자가 살고 있고, 백악관에는 아프리카 사람이 누워있다' '오바마를 케냐로 돌려보내라' '우리는 이번에는 무장하지 않고 왔다'... 불과 7, 8개월 전 역사적인 정권 출범이라고 떠들썩했던 축제 분위기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사태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윌슨 의원은 오바마의 의회 연설에서 했던 자신의 발언은 인종과는 관계없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민주당이 색깔 공세를 펴고 있다고 역공을 폈다. 그러나 보수색이 짙은 사우스 캐롤라이나가 지역구인 윌슨은 과거 백인우월주의를 표방한 인종결사체에 가입한 전력이 있다. 지금도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도를 상징하는 '남부동맹기'를 주 청사에 게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930년대 뉴딜정책을 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반대파로부터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환기의 큰 변화를 앞둔 시기에는 더욱 치열한 논쟁이 있곤 했다"는 말로 윌슨의 소동을 '선의'로 해석했다.
그러나 속마음도 그럴까.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피부색으로 말미암은 인종 갈등이 점점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선 패배로 만신창이가 된 공화당은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의장 선출과정에서 '버락, 신비로운 니그로'라는 메시지 송을 제작해 파문을 불렀다. 두 달 전 하버드대 흑인교수를 자택침입죄로 체포한 백인 경찰관과 교수를 백악관으로 불러 '맥주 정상회의'를 연 해프닝은 인종 갈등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는가를 일러준다.
중간선거는 인종갈등 시험대
지난해 대선 당시 오바마의 외곽 지원단체였던 빈민지원 비영리단체 '에이콘(Acorn)'이 공화당과 보수 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성매매자들에게 세금 회피 방법을 조언하는 모습이 공개된 것이 발단이나, 이면에는 대선에서 민주당 유권자들을 선거명부에 등록하는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데 대한 보수파의 보복심리가 깔려 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판을 흑백구도로 몰고 가려는 공화당의 공세는 갈수록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백인들의 표가 절실한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인종문제에 관해서는 수세일 수 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으로 '포스트 인종주의' 시대를 맞았다고 떠들썩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인종주의는 지금부터 더욱 기승을 부릴 조짐이다.
황유석 워싱턴 특파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