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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세종시 공약' 꼭 지켜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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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세종시 공약' 꼭 지켜야 하나

입력
2009.09.28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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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합도시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세종시에 관한 찬반 양론을 살펴보면 찬성론은 수도권 인구분산과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근거로 삼고 있다. 반대 입장은 행정기관들이 서로 멀리 떨어짐으로써 발생할 행정 비효율을 주된 근거로 내세운다.

이런 주장에서 일단 가장 명확한 것은 행정적 비효율이다. 서로 조율할 일이 많은 정부기관들이 두 시간 이상 거리가 떨어지도록 국민 혈세를 들여 행정복합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비효율 사례가 될 것이다. 만약 그대로 추진한다면 외국 경제학 교과서에 대한민국 세종시가 아주 부끄러운 사례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행정 비효율의 전형적 사례

반면 수도권 인구분산 효과가 얼마나 될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20조원이 넘는다는 세종시 건설비로 차라리 지방도시의 기반시설 등을 확충하는 것이 수도권 인구 분산에 훨씬 도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지방 도시 몇 곳에 최고 수준의 어린이 보육시설을 만들어 무료로 제공하면, 아이를 맡길 곳 없는 많은 맞벌이 부부가 그 도시로 이주해 올 것이다. 이에 따라 그 도시로 이전하는 기업들도 있을 것이다. 그만한 돈으로 수도권 인구분산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는 방법은 그 밖에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세종시 계획 자체가 부적절한 데도 불구하고 반대론을 펴는 데 걸리는 것이 바로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다. 이미 토지 수용이 이루어지고 건설이 상당히 진척된

국가적 프로젝트를 정부가 바뀌었다고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정치인들이 선거 전에는 마구잡이로 거창한 공약을 쏟아냈다가 막상 당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시침 뗀다면 선거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의 기반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과연 정말 그럴까? 정치인이 선거 전에 내건 공약을 반드시 지키도록 해야 하는 이유는 선거 승리를 위해 아무리 다급하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없거나 국가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공약을 내걸지 않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선거 때 면 실현 불가능하거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인기 영합적인 공약이 넘쳐난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대표적이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라 행정복합도시로 수정된 계획을 그대로 지키겠다는 공약도 마찬가지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서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대운하를 만든다는 공약도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들보다 더욱 문제가 많은 것은 바로 우리 자신, 우리 국민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공약의 실제 효과나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럽더라도 자신과 자기 지역에 이득이 된다면 일단 표를 몰아주고 보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권자들이 실현가능성과 효과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공약만 믿고 표를 찍어 주는 현실에서 이를 이용하지 않은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헛된 공약 믿고 부추긴 대가

이런 경위를 되돌아보면, 세종시든 대운하든 모든 공약과 계획 자체를 백지화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모른다. 그래야 국민들이 애초 말도 안 되는 헛된 공약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즉흥적이고 인기 영합적인 공약은 지켜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정치인들이 무슨 말을 하든 국민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길랑 하지 말라"고 비웃어 넘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머쓱해진 정치인들도 더 이상 헛된 공약을 내걸지 못할 것이다.

세종시에 이미 막대한 돈이 투입됐고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에 흠이 가더라도, 정치인들의 허황된 말과 행위를 부추긴 국민이 부담해야 마땅한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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