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이후에 바뀌든 안바뀌든, 해답을 얻든 못 얻든 걷는 중에 스스로 의문을 갖잖아. 그런 물음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79쪽)
1992년에 대학생이 된 소설가 해이수(36)는 '해외여행 1세대'다. 방학을 이용한 유럽배낭여행, 영미권 국가로의 어학연수 등이 그 시절 대학생들에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대학 졸업후 호주 시드니에서 5년간 언어학을 공부하고 '횡문화 소통'(cross cultural communication)분야 석사학위를 딴 그에게 '이종문화간 접촉'이라는 주제는 자연스럽게 소설적 자양분이 됐다.
'해이수'는 물론 필명이다. 본명은 김태수. 외국 생활에서 친구들이 그를 부를 때 "헤이, 수!"라고 했던 것이 그대로 필명이 됐다. 200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유학생활 체험에 바탕해 호주를 무대로 한 소설집 <캥거루가 있는 사막> (2006)을 펴냈던 그가 두번째 소설집 <젤리 피쉬> (이룸 발행)에서는 무대를 더 넓혔다. 7편의 수록작 중 6편이 외국이 무대로, 호주뿐 아니라 히말라야 산악지대, 아프리카 케냐 등으로 공간이 확장됐다. 젤리> 캥거루가>
설악산이나 오대산 혹은 강릉 대신 히말라야, 킬리만자로, 시드니의 풍광이 압도하고 있는 해이수의 소설들은 한 젊은 작가의 이국취향에 대한 경사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것들이 '여행을 통한 자아의 각성'이라는 질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이 멀리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부터 이어져온 뛰어난 여행서사의 덕목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 그는 말한다.
"불안은 자신을 더 잘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예측할 수 없는 공간에 던져지면 자아의 모습을 그려내기가 쉽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자아의 불안이 제 소설의 화두죠. 그런 면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은 적절한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히말라야 트레킹, 케냐에서의 심포지엄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네팔 3부작('고산병 입문', '루클라 공항', '아웃 오브 룸비니')이나 '나의 케냐 이야기' 같은 작품에서 길 떠나는 이들은 일상의 지루함, 자기환멸,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의 여정은 녹록지 않고, 그들은 자주 난처한 상황에 '던져진다'. 얼굴 전체가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고산병에 시달리거나, 비행기가 눈 사태 때문에 기약없이 지체되거나, 혹은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밀림에서 갑자기 요의를 느껴 사파리 차량에서 내려야 하는 식이다. 심신을 자연에 방기한 채 일상탈출의 여유로움을 누리려는 기대는 깨어지고 그들은 여행의 '불편한 진실'과 대면한다.
그것은 가령 두 다리를 가진 인간이면 모두 평등하다는 히말라야에서 고산병 때문에 생사의 기로에 놓일 때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히말라야의 신이 아니라 구조헬기를 부를 수 있는 크레디트 카드라는 것, 혹은 신문 전화 TV 따위를 잊으려 떠나지만 며칠만 지나면 다시 그것을 못견디게 그리워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게 된다는 것 등이다.
불편한 여정을 통해 얻은 화자들의 이런저런 각오들은 "높이 오르는 것과 깊이 내려가는 것은 전혀 상반된 것이 아닌 하나임을. 높아질수록 네가 깊어지고, 깊어질수록 네가 높아지며, 높아지고 깊어지면 당연히 네가 넓어진다는 것"(72쪽), "인간은 자신의 운명과 마주해야 할 뿐 아니라 추월할 수도 있어야 한다"(144쪽)같은 언술로 육화된다.
여행을 통한 자기발견이라는 익숙한 주제뿐 아니라, 그의 이번 소설집에서는 오리엔탈리즘의 프리즘으로 제3세계의 현지인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언뜻 느낄 수 있다. 앞으로 그의 소설이 문화 사이의 위계를 응시하는 정치·사회적 문제들로 나아갈지 주목할 만하다.
"우리가 (선진국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단계가 아니라, 이제는 바라보는 단계가 된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 만난 제3세계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탈북자, 이주노동자들 문제가 중요해진 것도 그래서이겠지요. 앞으로 그 사람들과의 소통의 문제를 다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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