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첫 동네' 전남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심원(深源)마을은 노고단(해발 1507m) 턱 밑 깊숙이 안겨 있는 사연 많은 마을이다. 흙벽돌로 벽을 쌓고 등잔불로 밤을 밝히며 살아가던 이곳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았다.
길은 물론, 전기와 세금도 없었다. 그러나1988년 이후 지리산 일주 도로가 뚫리자 오지마을의 때묻지 않은 자연과 음식을 찾는 관광객이 줄지어 찾아와 지리산의 명소가 됐다.
1986년 8월 지리산 깊은 곳에 전설 같은 마을이 있다는 풍문을 들었다. 구례에서 가려면 화엄사 뒤 계곡을 따라 노고단으로 오른 후 내려가야 한다는 말에 전북 남원에서 뱀사골을 거쳐 달궁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서울에서 꼬박 이틀이 걸리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23년이 지나 심원마을을 다시 찾았다. 가을비를 한껏 머금은 구름, 그 위로 치솟은 산봉우리들의 웅장함에 감탄하다 성삼재로 향하는 일주도로 옆에 서 있는 '하늘 아래 첫 동네 심원마을 안내도'를 보았다. 민박 고로쇠약수 토종꿀 등을 접할 수 있는 곳이 사진과 함께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서울에서 출발한지 5시간만이다
"이게 누구여, 옛날에 왔던 젊은이지라." 심원민박 앞에 앉아 있던 정봉옥(82) 할머니가 반갑게 반겼다. 6.25전쟁이 끝나고 공비가 사라진 직후 살기 시작한 정 할머니는 현재 15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고 했다. 반달곰 복원사업 때문에 산나물 캐러 가도 곰을 볼까 무섭다는 김애순(57)씨는 "세금도 다 내고 사는데 지리산 곰이 주민보다 대우 받는 세상이다"고 푸념했다.
첫 방문 당시 심원마을 사람들은 도로가 뚫려 개발이 되더라도 가옥과 생활풍습은 지키겠노라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옛 모습은 사라지고 고즈넉하던 마을에는 팬션이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이 모습조차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는 지리산 보호를 위해 관통도로 통행을 점진적으로 제한하고,정상에 오르는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인적이 끊기기 전에 주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이주대책이 마련되고 하늘 아래 첫 동네가 지리산 속에 남아 있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편집위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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