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로터리쯤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고 돌아가는 듯한 남자를 보았다. 윗단추 몇 개를 풀어헤치고 삐딱하게 모자를 썼다. 한손은 주머니에 찔러넣고 다른 한손에 담배를 들었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불량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동교동 쪽에서도 예비군 복장의 다른 남자와 마주쳤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 불빛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선 그는 한 다리를 벌린 채 만사 귀찮다는 표정으로 허공을 꼬나보고 있었다.
체격과 생김새가 딴판인 두 사람이 비슷해보였다. 일명 예비군 포즈 때문이었다. 양복 입고 멀쩡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남자들도 예비군복만 입었다 하면 0.1초 만에 망가져버린다. 예비군 동원훈련장에서는 더 가관이라고 한다. 내무반에 도착하자마자 침상에 벌렁 누워 일어날 줄 모른다. 모여라, 줄서라 등의 통제에도 일단 불평부터 하고 본다. 남편도 어제 아침 민방위 소집훈련에 다녀왔다.
여느 때보다 좀 일찍 일어나느라 투덜댔던 것만 빼면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던 그도 껌을 씹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예비군복만 입지 않았달 뿐이었다. 민방위 소집 장소는 큰애가 졸업한 초등학교였다. 운동장 여기저기 삐딱하게 선 남자들의 그림이 떠올랐다. 평상시와 다른 그 모습을 큰애라고 놓칠 리 없었다. 위급할 때 정말 민방위 아저씨들이 무언가를 하긴 하느냐고 걱정이 늘어졌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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