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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언어학 카페, 말들의 모험] <1>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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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언어학 카페, 말들의 모험] <1> 연재를 시작하며

입력
2009.09.28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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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월요일 아침마다 독자를 찾을 '말들의 모험'은 말에 대한 수다입니다. 그 말은 한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같은, 인류가 의사를 소통하기 위해 쓰는 자연언어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로쿠엔스(말하는 인간)로 만든 언어, 사람을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만든 언어 말입니다.

에스페란토처럼 세계어를 지향해 특정한 개인이 만든 인공어나, 컴퓨터 언어처럼 의미를 정확히 연산하기 위해 수학자나 철학자들이 고안해낸 논리언어, 개미들의 화학적 언어나 벌들의 비행(飛行)언어처럼 인류 이외의 동물들이 의사를 주고받기 위해 쓰리라 짐작되는 유사언어는 우리 눈길을 받기 어려울 겁니다. 부제에 '언어학'이라는 말이 들어있으니, 일종의 언어학 에세이가 되겠지요.

그렇지만 신문 지면에서 어떤 학문적 담론을 펼치는 것은 부적절한 일일 겁니다. 곧은 자세로 앉아 낱말 하나하나의 뜻을 헤아리며 신문을 읽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말들의 모험'이 언어학 에세이라 하더라도, 이 에세이는 언어'학'의 변죽만 울리게 될 겁니다. 미리부터, 굳이 '공부하는 마음가짐'을 지닐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말들의 모험'이 지적 담론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전문 담론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드물겠지만, 교양 담론을 슬며시 넘어서는 일은 잦을 겁니다.

'말들의 모험'은 되도록 쉬운 말들로 짜이겠지만, 지적 담론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어려움까지 솜씨 좋게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변죽만 울린다 하더라도, '말들의 모험'은 언어학 담론에 바짝 붙어 있게 될 테니까요.

사람들이 언어에 지적 관심을 기울인 역사는 수천 년에 이르지만, 언어학이 분과학문으로 자립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들어서입니다. 그리고 이 학문은 20세기 들어 만개합니다.

특히 20세기 중엽에 구조주의라는 사조 또는 방법론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휩쓸면서, 언어학은 얼마동안 학문의 제왕으로까지 군림하게 됩니다. 구조주의의 발원지가 언어학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조주의'에서 '구조'(structure)는 '유기적 관계들의 더미'라는 뜻입니다.

언어가 '유기적 관계들의 더미'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일반언어학강의> ('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 줄여서 CLGㆍ1916)라는 책이 출간되고부터입니다. CLG의 저자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라는 스위스 언어학자입니다.

꼼꼼한 독자라면, CLG의 발간년이 소쉬르의 몰년(沒年)보다 뒤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CLG는 소쉬르가 죽은 뒤에 나왔습니다. 소쉬르가 <일반언어학강의> 라는 제목의 유고를 남긴 것도 아닙니다.

그는 제네바대학에서 일반언어학을 가르쳤을 뿐입니다. 소쉬르는 이 대학에서 일반언어학 강의를 세 차례(세 학기)에 걸쳐 했습니다. 첫 번째 강의는 1907년 1월부터 그 해 7월까지, 두 번째 강의는 1908년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세 번째 강의는 1910년 10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진행됐습니다(일반언어학은 말 그대로 언어 일반에 대한 학문적 탐구를 가리킵니다.

이에 견주어 한국어학, 영어학, 일본어학처럼 특정 자연언어를 대상으로 삼는 학문은 개별언어학이라고 합니다. 소쉬르가 제네바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1891년 겨울학기부터고 정교수가 된 것은 1896년입니다. 그는 제네바대학 초기에 산스크리트어학이나 프랑스어학 같은 개별언어학을 가르쳤습니다).

CLG는 소쉬르의 이 세 차례 일반언어학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노트를 밑절미 삼아 샤를 발리와 알베르 세슈에라는 언어학자가 편집한 책입니다. 발리와 세슈에는 소쉬르의 제네바대학 제자입니다. 이 두 사람은 스승의 일반언어학 강의가 그의 죽음과 함께 묻히는 게 아까워 이를 책으로 되살리기로 한 것입니다.

이들의 노력은 소쉬르라는 이름에 불멸의 영예를 헌정한 것과 동시에 '진짜 소쉬르'를 찾기 위한 후대 언어학자들의 기나긴 여정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근대 언어학의 역사를 두 세기 남짓으로 잡을 때, 19세기와 20세기를 각각 대표하는 언어학자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등수 매기기는 본디 비(非)학문적이고, 뛰어남은 계량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끼친 학문적 영향은 얼추 계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가장 위대한 언어학자인지를 따지는 것은 비학문적이고 허망한 일이겠지만, 누가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나를 따지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영향력을 기준으로 삼을 때, 19세기를 대표하는 언어학자가 소쉬르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언어학자가 노엄 촘스키(1928~)라는 데에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겁니다.

물론 20세기 사람 촘스키만이 아니라 19세기 사람 소쉬르 역시, 그 영향력이 행사된 시기는 20세기입니다. 다작의 촘스키는 그 영향력을 그때그때, 곧바로 행사할 수 있었지만, 과작의 소쉬르는 죽은 뒤에야 <일반언어학강의> 를 통해 후대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

언어학계 바깥 사람들에게,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의 언어학자 촘스키는 전투적 정치평론가로 기억됩니다. 실상 그의 언어학 책보다 정치평론서가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 더 넓고 깊은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촘스키는 학자 이미지보다 지식인 이미지가 더 짙습니다. 그러나 지성의 역사에서 촘스키는 지식인으로서보다 학자로서 더 많은 페이지를 할당받을 게 분명합니다. 지식인 촘스키를 대치할 만한 사람은 몇몇 떠올릴 수 있지만, 언어학자 촘스키를 대치할 만한 사람은 도무지 떠올리기 힘들어서 하는 말입니다.

촘스키의 <통사구조론> ('Syntactic Structures'ㆍ1957)에서 싹을 틔운 변형생성문법(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 줄여서 TG)은 20세기 언어이론에 말 그대로 혁명을 불러왔습니다. 이 혁명적 언어학을 촘스키는 같은 제목의 저서에서 '데카르트 언어학'(Cartesian linguistics)이라고 불렀습니다.

지식의 계보에서 촘스키가 과연 데카르트의 적통(嫡統)인지를 두고 지성사적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이 유대계 미국인이 합리주의와 심성주의(mentalism)의 실로 20세기 주류 언어학의 피륙을 짠 것은 확실합니다.

다시 소쉬르로 돌아가 봅시다. 소쉬르 언어학은 두 권의 책에 망라돼 있습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CLG고, 다른 하나는 1922년 파리에서 간행된 <페르디낭 드 소쉬르 학술논문집> 입니다.

이 논문집에는 21세의 소쉬르에게 학문적 명성을 안긴 '인도-유럽어 모음들의 원시체계에 관하여'(1878)를 포함해, 그 때까지 확인된 소쉬르의 글들이 모두 묶였습니다. 이 책은 소쉬르의 지적 조숙과 천재를 넉넉히 증명하지만, 그를 구조주의의 아버지로 만든 것은 제자들이 편집한 CLG입니다.

언어가 유기적 관계들의 더미라는 생각은 CLG에서 여러 차례 피력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구조'라는 말로 명시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대체로 '체계'(systeme)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다시 말해 CLG에서 반복되는 '체계'라는 말은 20세기 구조주의자들이 말하는 '구조'와 거의 같은 뜻입니다. 조르주 무냉이라는 프랑스 언어학자가 소쉬르를 '자신이 구조주의자인 줄 몰랐던 구조주의자'라고 일컬은 것은 이런 연유에서입니다.

CLG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언어학의 유일하고 진정한 대상은, 그 자체로서 또 그 자체만을 위해 고찰되는 언어다." 언어학의 대상을 좁고 엄격하게 규정한 이 문장은 소쉬르 사상의 한 핵심으로 널리 인용돼 왔습니다.

그러나 CLG 독자들은 이 마지막 문장과 맞닥뜨리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CLG의 뒷부분은 지리언어학이나 언어인류학 같은, '그 자체로서 고찰되는 언어' 바깥에까지 눈길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뒷날 소쉬르 연구자들은 소쉬르 수강생들의 강의 노트에 이 구절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문장은 발리와 세슈에가 자의로 끼워 넣은 것입니다. 실상 이들은 소쉬르 만년에 이미 제네바대학 강사 노릇을 하고 있었던 터라, 스승의 일반언어학 강의 중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라 할 세 번째 강의를 거의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소쉬르의 생각은, 언어학이 언어와 관련된 모든 영역을 그 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로만 야콥슨(1896~1982)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소위 프라하학파를 이끈 이 러시아 출신 미국 언어학자는 1953년 인디애나대학에서 열린 언어학 심포지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언어학자다. 언어와 관련된 것 중 내게 무관한 것은 없다."(Linguista sum: linguistici nihil a me alienum puto.) '말들의 모험'도 야콥슨의 이 오지랖넓은 언어학과 친할 것 같습니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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