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관광객이 늘 북적거리는 창경궁의 북쪽,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는 한국 전통 음식의 대종가인 ㈔궁중음식연구원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궁중 음식의 명맥은 이 아담하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한옥에서 한복려(중요무형문화재 38호) 이사장의 손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한 이사장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주방 상궁이었던 고 한희순 상궁으로부터 궁중 음식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어머니 고 황혜성 선생이 마지막 나날까지 기거했던 이 건물 안채의 대청마루에서 말문을 열었다. "요즘 한식 세계화를 두고 여기저기서 많은 논의가 쏟아지고 있어요. 참 기쁜 일이죠. 하지만 큰 전략과 세부 실천 방법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전통문화의 정수는 바로 궁중에 있다. 하지만 조선 왕실이 사라진 이후 궁중 문화를 현대화하고 생활화할 계층이 없어져 버렸다. "전통문화가 보존되고 있는 나라들을 보면 영국 일본 태국처럼 왕실이 있거나 아니면 사회 지도층이 자국의 문화를 알리는 홍보 대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경우인데 우리는 둘 다 아니죠."
궁중 음식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지도층이 이를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발전시키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MBC 드라마 '대장금'에 나온 궁중 요리를 찾는 걸 여러 번 봤어요. 하지만 정작 한국은 드라마 속의 품격 높은 궁중 음식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나 자문하게 됩니다."
그는 제대로 된 한국 전통문화를 소개해 줄 공간이 하루 빨리 생겨야 한다고 믿고 있다. "지금이라도 음식에서부터 음악 공연 기물에 이르기까지 한국 최고의 전통문화 기능자들이 모여 하나의 샘플이 되는 한식당을 만들 때가 됐어요. 하지만 궁중음식연구원이 이 큰 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에는 참 힘이 드네요."
특히 전통에 대한 확고한 이해와 연구 없는 세계화는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생각. "음식은 어느 날 갑자기 기능을 배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 듯해요. 그 사람의 인생과 철학이 뒷받침될 때 완성되죠. 그게 전통이죠. 그런 면에서 '한식 조리 기능인'이 아닌 진정한 전통 한식의 명인을 배출할 수 있는 교육 기관이 꼭 필요하죠."
한 이사장은 한 상궁에서 어머니를 지나 자신에게까지 이어진 한국 음식의 전통이 다음 세대로 제대로 넘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은 듯 보였다.
"지난 30년 간 끊임 없는 도전과 고난 앞에서 궁중 음식의 정체성과 전통을 지켜 오신 어머님을 모셨어요. 그리고 이제는 제가 그 뜻을 이어받고 있죠. 하지만 이제라도 보다 많은 분야의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함께해서 이 전통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발전시키는 일이 절실합니다."
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r
■ 이웅규 교수가 본 한 이사장
어머니인 고 황혜성 선생으로부터 조선왕조 궁중 음식의 법맥을 이어받은 한복려 이사장은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한식 붐을 조성한 MBC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한국 궁중 음식의 높은 품격과 다양성을 선보인 주인공이다.
그가 이 드라마에 공을 들인 것은 궁중 음식을 대하는 한국 국민들의 의식과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한식 세계화는 불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요즘 더욱 더 바빠졌다. 한국 식문화의 정수인 궁중 음식을 보급하고 전수할 수 있는 박물관 설립과 전통 음식의 학문적 연구를 발전시킬 학제적 연구까지 할 일이 산더미이기 때문이다.
세계한식요리경연축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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