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에 린바오(林彪) 만큼 공헌한 이는 없다.'
마오쩌둥(毛澤東)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적발돼,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졌다는 중국의 천재적 군사지략가이자 장군인 린바오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신중국 건립 60주년을 앞두고 활발하게 일고 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SCMP는 27일 '군사천재 린바오가 사망한지 수 십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통해 린바오를 무덤속에서 다시 불러냈다.
린바오는 중국 공산당이 장개석의 국민당군을 몰아내고 대륙을 장악하기까지 혁혁한 전공을 세운 장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도 승승장구해 1969년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공식 지명됐으나 71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1907년 후베이성(湖北)성에서 태어난 린바오는 18세의 나이에 공산당에 입당해 국공내전과 항일전쟁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워, 약관 23세의 나이에 지휘관의 자리에 오르는 등 천재적 군사능력을 과시했다.
그는 신중국 건립 이후에도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을 지지해 당정 요직에 중용됐다. 하지만 마오와의 권력투쟁에 휘말려 가족들을 데리고 소련으로 망명하려다 몽골의 한 평원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숨졌다.
지금까지는 린바오가 실제로 쿠데타를 기도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수많은 중국인들은 린바오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추억했다.
마침내 2007년 8월1일 인민해방군 창군 80주년 기념식에 즈음해서 린바오의 사진과 이름이 중국의 공식매체에 등장하면서 정치적 복권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현재 인터넷에는 린바오와 관련된 수많은 논문들이 올라오고 있으며 본토 내 작가와 역사가들도 그를 소재로 한 책을 속속 펴내고 있다.
중국의 한 퇴역장성은 SCMP와의 인터뷰에서 "린바오의 비극은 마오쩌둥 시대 정치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다"면서 "당시에는 순조로운 권력이양을 위한 법이나 메커니즘이 전혀 없었다"고 회상했다.
최형철 기자 hc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