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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제한 없다? 취업선 여전히 '커트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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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제한 없다? 취업선 여전히 '커트라인'

입력
2009.09.28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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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A대학 법대에 1999년 입학해 지난달 졸업한 송모(30)씨는 올해 초 사법시험 준비를 포기하고 취업 전선에 나섰다.

900점 가량의 토익 점수에 실제 영어회화도 수준급이며 학점도 괜찮은 편이어서 취직한 후배들과 비교해봐도 꿀릴 게 없는 '스펙'(자격요건)이었다.

나이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올해부터 시행된 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기업들이 입사 조건에서 나이 제한을 없앴다는 말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올해 3월 이후 대기업 10곳에 지원했으나 단 2곳을 제외하고는 서류심사도 통과하지 못했다. 최종면접까지 오른 2곳의 면접관들도 "졸업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며 나이를 문제 삼았다. 올해 상반기 지원한 곳 모두에서 딱지를 맞은 송씨는 "나이 때문에 제대로 취업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다시 고시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씁쓸해했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된 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채용 때 나이제한 규정이 금지됐지만, 대다수 기업들이 나이에 따른 고용차별 관행을 여전히 개선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늦깎이 구직자'들은 "대학원 진학 등으로 취업연령이 갈수록 늦어지는데, 한두 해 취업에 실패하면 나이 때문에 영원히 낙오자 신세가 될 수 있다"며 불안에 떨고 있다.

27일 한국일보와 취업사이트 '커리어'가 올 상반기 입사 면접 경험이 있는 348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5~31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면접에서 연령과 관련한 직접적인 질문을 받아본 적 있다"고 답한 사람이 348명 중 245명(70.4%)에 달했다.

특히 20대(45%)보다 30대(80%)의 응답률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입사 면접에서 연령과 관련한 질문은 연령차별금지법이 금지하고 있는 나이차별에 해당된다. 또 이 같은 질문을 받은 사람(245명) 중 약 75%(183명)는 "나이 때문에 불합격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채용공고 때 나이제한 규정을 없애긴 했지만, 실제로는 내부 규정을 두고 있다는 것이 대다수 구직자들의 항변이다. 올해 6월 국내 대형은행 계열사인 S신용정보에 지원한 정모(32)씨는 서류심사 결과를 보고 화가 치밀었다.

회사 홈페이지에 나온 서류전형 합격자 20여명의 주민번호 앞자리를 확인한 결과 30세(79년생) 이상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 정씨는 "나이제한을 하는 것이 확실한데도, 연령 기준을 없앴다고 말하는 것은 구직자를 우롱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보기술(IT) 분야 대기업인 L사는 올해 6월 Y공대에 취업자를 미리 선정해 교육시키는 '주문식 교육' 선발 공문을 보내면서 아예 25세 이하만 지원자격을 주도록 했다가 인권위에 적발됐다. 공문에는 "금년부터 공식적 연령제한은 불법이므로 학생들에게는 공개하지 말고 학과 내부 기준으로 활용하라"는 주의사항까지 담겨 있었다.

올해 8월 이 회사에 합격한 김모(29ㆍ남)씨는 "동기 500여명 대부분이 남자는 27~28세, 여자는 24~25세 정도였다"며 "내심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속해 놀랐다"고 털어놨다.

특히 여성 구직자들이 나이제한 차별을 더욱 심하게 겪고 있다. 올해 5월 모 제약사 신입사원에 뽑힌 여성들은 모두 올해 2월 졸업생이었다. 올해 7월 신입사원 12명을 뽑은 정부부처 모 위원회의 경우 여성 6명 중 5명이 24세였고 1명은 26세였다.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강모(28ㆍ여)씨는 "대학원에서 관련 논문을 썼고 경력이 충분했는데도, 면접에서 질문조차 거의 받지 못했다"면서 "결과를 보니 여성들 나이를 일정 선에서 맞춘 듯했다"고 말했다.

대기업 D사의 인사 담당자 이모씨는 "많은 회사들이 대외적으로는 나이제한이 없다고 말하지만, 서류심사 때부터 나이를 주요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나이 많은 사람을 뽑을 경우 사내 위계질서에 혼란을 줄 수 있어 고려하지 않을 순 없다"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미국 등에서는 구직광고에 '최근 대학 졸업자', '멋진 첫 직장', '신선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분' 등 젊은 연령을 연상시키는 문구도 연령차별로 보고 있다"며 "기업의 보다 적극적 인식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연령차별금지법

근로자의 모집, 승진, 해고, 퇴직, 전보 등에 대해 연령제한을할수없게한법으로 올해 3월22일부터 실시됐다. 올 해는 사원모집과 채용에만 적용되며, 2010년 1월 1일부터는 임금, 복리후생, 교육, 훈련, 배치, 전보, 승진, 퇴직, 해 고 등에도 적용된다.

'만 30세 이하',' 2009년 졸업(예정)자' 등의 조건을 제시하는 것, 면접관이"나이 어린 상사와 일할 수 있겠냐"고 묻는 것도 처벌대상이다. 연령차별을 당한 지 1년 안에 인권위에 진정을 내면 인권위는 먼저'권 고'를 통해 자체 시정기회를 주며, 권고를 받고 6개월 안에 이를 바꾸지 않고 반복하거나 고의적이라는 게 인정되면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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