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부터 강화도에 살면서 뻘밭에서 게도 잡고 소라도 건지고, 배 타고 나가 낚시도 드리우며 시를 쓰고 있는 시인 함민복(47)씨. 그의 새 에세이집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현대문학 발행)에는 그가 최근 3~4년 동안 쓴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모여있다. 길들은>
2007년 4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한국일보 칼럼 '삶과 문화'에 연재했던 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5월까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연재했던 글 등이 포함돼 있다.
책에는 문자 그대로 그의 시의 모태가 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가난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어린 시절의 추억, 인간과 자연과의 교호, 팍팍한 현실에 대한 쓴소리 등 여러 마디의 단상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며 쓴 '산소 코뚜레'는 읽는 이의 누선을 건드린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투병 중이던 어머니의 병실을 지키며 '어머니, 소가 되셨나요. 왜 코뚜레를 하고 계세요? 어머니 코끼리가 되셨나요. 왜 코에서 나온 호스로 미음을 드시죠? 어머니, 소처럼 벌떡 일어나세요'라고 외치는 시인은 연재 당시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렸다.
자주 찾는 강화도 전등사 산책길에 느낀 단상인 '전등사 가는 길'에서 그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의 아름다움을 웅변한다. "꿩이 내달은 길은 고라니 길이 될 수 있고 고라니 길은 사람 길이 될 수 있다. 사람이 걸어다니던 길은 큰 차도가 될 수도 있다. 길끼리 만나지 않는 길은 존재할 수 없다. 길 중에 섬인 길은 없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풍부한 감성으로 적지않은 독자들을 지니고 있는 그의 시의 비밀이 어디서 연유하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글들도 찾을 수 있다. 풀꽃 한 포기, 곤충 한 마리, 물고기 한 마리의 목숨도 소중히 여겼던 마음이야말로 그의 시의 젖줄이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수업을 빼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물고기를 잡던 중학교 시절 추억의 한 토막은 아련한 슬픔의 여운을 남긴다. "그땐 물고기를 잡아 꿰미에 끼우지 않고 다 살려주었다. 물고기 무게를 손바닥으로 저울질해보다 까만 붕어 눈동자를 보고 잠시 슬퍼지기도 했으나 물고기를 잡고 있는 순간만큼은 아무 걱정도 들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가난한 아이의 자존심이 다치지 않게 잡아온 물고기를 돼지고기와 말없이 바꿔주던 옆집 정육점 주인, 굴렁쇠를 훔치러 간 아이와 친구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점잖게 타일러주던 엿장수 이야기 등 추억 어린 글도 독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한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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