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캐럴 오츠 지음 · 강수정 옮김/예담 발행 · 368쪽 · 1만1,000원
1964년 첫 소설 <떨리는 가을에> 를 발표한 이래 1,000여편의 단편, 50편이 넘는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있는 정력적인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71). 미국 작가로는 토니 모리슨의 수상(1993) 이후 맥이 끊긴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떨리는>
<멀베이니 가족> <사토장이의 딸> 등 국내에도 번역된 장편소설들에서 인간 내면의 상처와 위선을 후벼파듯 파헤쳤던 오츠의 솜씨는 소설집 <여자라는 종족> 에서도 변함이 없다. 2001~2004년 발표한 단편 9편이 묶여있는데 주인공이 모두 여자인 일종의 테마소설집이다. 어린 창녀, 젠체하는 부르주아 여성,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등 등장 여성들의 계급과 계층은 다양하지만, 이들은 무언가에 억압받고 교묘히 희생되는 인물들이라는 맥락에서 교집합을 갖는다. 여자라는> 사토장이의> 멀베이니>
그 '무언가'란 대개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질서다. 거기에는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여성을 식민화하고 타자화하는 남성의 시선 등 무형의 폭력도 포함된다. 수록작 '하늘에 맹세코'의 여주인공은 부유한 계층의 응석받이 딸이다. 하층계급 출신 보안관의 남성적 매력에 빠져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열여덟의 나이에 결혼한다.
신혼의 단꿈도 잠시뿐. 가족이 끔찍한 피살사건에 연루되고 동료가 백혈병으로 급사하자 남편은 돌변해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여성의 맹목적인 애정에 대한 남성의 폭력과 외도라는 보답은 페미니즘 소설에서 어렵지않게 보아온 구도. 그러나 오츠 소설의 특징은 여성의 분노 표출 방식이 가차없고 냉혹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은 그토록 손에 대고 싶지 않았던 남편 사냥총의 방아쇠를 남편을 향해 당기는 일이다.
의붓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중년 남성의 성 노리개 노릇을 하게 된 어린 소녀가 자신의 삶을 견디다 못해 상대 남성을 면도칼로 난자한다는 내용의 '인형, 미시시피 로맨스'의 결말도 참혹하다. 수록작들은 일견 잔혹동화를 연상시킬 정도다.
물리적 폭력의 직접적 희생양은 아니지만 남성의 시선에 포박돼 자아를 잃은 여성들에 대해서도 작가는 결코 자비롭지 않다. 거부의 후처로 뉴욕 쇼핑가에서 명품을 쇼핑하고, 개인 트레이너를 불러 다이어트에 몰두하는 여성이 도살장의 소처럼 사지가 절단돼 마네킹이 된다는 '마네킹이 된 여자' 같은 작품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오츠의 냉정한 시선을 투영한다. 못생기고 뚱뚱하다는 이유로 결혼을 못한 간호사가 빈사 상태의 환자 수십여명에게 약물을 투여해 안락사시키고 자신도 약물로 목숨을 끊는다는 '자비의 천사' 같은 작품은 섬?한 전율을 주기에 충분하다.
단편들을 묶었지만 다중시점과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는 등 멈추지 않는 실험정신, 인간 내면의 고통을 고약할 정도로 깊이 들여다보는 오츠 문학세계의 정수를 맛보려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근사한 선물이 될 듯하다. 김욱동 한국외대 교수는 "이민자나 흑인 등 미국사회 내 비주류 집단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미국 현대소설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백인 작가인 오츠는 오히려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면도 없지 않다"며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써왔지만 오츠의 작품세계는 기본적으로 가부장 질서에 대한 비판을 담은 페미니즘 성향을 깔고 있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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