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정호냐?""아이고, 형님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북측에 국군포로가 된 이쾌석(79)씨가 남쪽의 동생 정호(76)씨를 만나기 까지는 꼬박 59년이 걸렸다. 20살, 17살 청년이던 형제는 반백의 노인으로 만났다. 이들은 26일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1층 면회장에서 꿈에 그리던 상봉을 했다.
이날 상봉에서는 국군포로 한 가족과 납북자 두 가족이'특수 이산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이쾌석씨는 동생 정호 정수(69)씨를, 1987년 1월 납북된 동진호 선원 노성호(48)씨는 남측의 누나 순호(50)씨를, 또 다른 동진호 선원 진영호(49)씨는 누나 곡순(56)씨를 각각 상봉했다.
국군포로 이씨 형제 사연은 특히 애절했다. 쾌석씨는 1950년 길에서 갑자기 징집된 후 가족들과 반세기 넘게 생이별을 했다. 1960년 쾌석씨의 전사통지서를 받았던 남측 가족은 올 6월에서야 쾌석씨의 생존 사실을 정부로부터 들었다.
이날 3형제는 너무 감격스러워 상봉 내내 손을 꼭 부여잡고 놓지 않았다. 쾌석씨는 동생이 고향에 선산을 구입해 돌아가신 부모를 모셨다고 말하자 "잘했다. 나는 너한테도 죄를 짓고 부모님한테도 죄를 지은 거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상봉 이틀째인 27일 다시 형을 만난 정호씨는"형님에게 술을 주려고 했으나 형님이 사양하며 '부모님 영전에 갖다 드리고 내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동진호 선원 진영호씨는 22년 만에 누나 곡순씨를 만났으나 담담한 표정이었다. 상봉도중 대화도 영호씨가 북에서 결혼한 부인 안금순씨와 딸 선미씨가 주로 했다. 영호씨는"남한에서 나쁜 일을 저질러 경찰을 피해 배를 탔다"며"남조선에 있었으면 장가나 가고 집이나 있겠느냐"고 말했다. 영호씨는 납북 후 결혼해 아들(22)과 딸(19)을 뒀으며, 평북 박천군 박천읍에 살면서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진호 선원 노성호씨도 누나 순호씨를 만났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남매가 서로의 얼굴을 알아 보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성호씨가 "여기서 장가도 가고 대학도 가고 잘 살고 있다. 평양에서 어엿한 직장도 다니고 있다"고 말하자 누나는"잘 됐으니 흐뭇하다"고 답했다.
이번까지 17차례 이산상봉을 통해 북한에 살고 있는 납북자 494명 중 16명, 국군포로 560여명 중 12명 등 특수이산가족 28명이 남한의 가족과 상봉했다. 12명의 동진호 납북 선원의 경우 6명이 남한 가족들과 만났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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