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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값비싼 와인의 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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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값비싼 와인의 허영

입력
2009.09.25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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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라는 말이 있다. 먹고 마시는 것이 정말 나라면, 나는 통닭이고, 복분자주고, 바짝 구운 삼겹살이고, 20도가 채 안 되는 소주다. 그렇다면 비싼 음식을 먹으면 나도 덩달아 비싼 사람이 되는 걸까. 그런 기대를 채워 줄 수 있는, 허영을 위한 음식이 있는지 생각해 봤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스시. 서구인들이 처음 스시를 접한 것은 1970년대 후반, 80년대 초쯤으로 이야기 된다. 유럽에도 '타타르 스테이크'라는 프랑스식 육회 요리가 있고, 이탈리아 사람들도 생선을 날것으로 얇게 슬라이스해서 올리브 오일, 식초, 소금으로 간을 해 먹기도 하지만 아예 날 생선을 종류별로 썰어 먹는 일본식 스타일이 처음 서구에 전해졌을 때 거부감을 느꼈던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신선한 생선이 주인공이 되는 생선 초밥의 특성상 제대로 한다는 스시집은 저렴한 가격표를 달기 어렵다. 좋은 생선으로 초밥을 만들수록 단가는 절로 올라가니 서양에서 스시를 만드는 집은 의례 고급 음식점으로 취급됐다.

'스시를 먹을 줄 안다'고 하면 미식에서 앞서가는, 선입견 없고 외국 문물에 오픈 마인드인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는데…. 실제로 스시를 먹을 때마다 속으로는 곤혹스러울지라도 비즈니스 파트너를 감동시키기 위해, 혹은 애인에게 '쿨'한 남자로 보이기 위해 먹는 설정이 80, 90년대의 서양 영화나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같은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와인'이다. 복잡다단한 와인의 세계에 서서히 빠지게 되는 경우보다는 비즈니스 때문에 급하게 배운 경우, 와인 애호가인 지인 때문에 얼떨결에 모임에 나가게 된 경우 등이 많다. 주변을 의식해서 필요 이상으로 값비싼 와인을 오픈해서 '뚝딱' 마셔 버린다든가, '선물용'이라는 목적 아래 무조건 고가의 와인만을 사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날생선을 먹던 20세기는 이미 과거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으니 먹고 마시는 일도 보다 실용적으로 관장할 수 있지 않나. 추석이 다가오면서 엄청난 가격표를 달고 나오는 와인 선물 세트를 구경하다가 든 생각이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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