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약(Kayak)이 뒤집혔다. 하체가 배에 고정된 채 물속에 거꾸로 매달렸다. 오른팔을 뻗어 노(패들)의 한쪽 끝을 물 밖으로 내밀어 지지대로 삼고 상체를 일으켜야 하는데 노 끝이 물 밖으로 나가기는커녕 물 속을 휘저었다.
물의 표면장력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허리를 밸리댄스 추듯 튕겨 물 밖으로 나오는 게 요령. 그러나 예닐곱 번을 반복해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코로 들어온 물이 비강을 싸하게 씻어 내려 가며 기침까지 나오는데 김동현 강사는 아랑곳 않고 "한 번 더"만 외쳤다. 한가하게 '물이 차갑다'는 하소연이나 할 계제가 아니었다.
카약의 기본 '스위프 롤(Sweep Roll)'은 급류를 헤쳐 나가다 배가 뒤집혔을 때 빠르게 배를 복원하는 기술이다. 상체를 왼쪽으로 틀어 노를 잡은 손을 배 왼쪽에 붙이고 반동을 이용해 오른쪽으로 배를 뒤집는 것.
서너 번 반복하면서 물 속에서 눈을 떠 노의 끝을 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팔을 충분히 뻗지 않았거나 허리 반동이 약하거나 한 번 시도할 때마다 한두 가지씩 지적을 받았다. 10여 차례 훈련을 했는데도 강사의 눈에는 여전히 부족한 듯했다. 숨이 턱까지 차고,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결국 백기를 들었다. "선생님, 못 하겠어요."
21일 기자가 도전한 종목은 급류카약. 배 길이가 2m도 안 되게 짧고, 앞이 뭉툭한 모양이어서 다양한 기술이 가능하다. 뱃머리를 물속에 담근 채 곧추세우는 '바우 스톨(Bow Stall)', 그 상태에서 앞으로 360도 재주를 넘는 '프론트 루프(Front Loop)' 등 곡예를 펼칠 수 있다.
그런데 기자는 아쉽게도 기초 교육에서 포기한 셈이다. 낙담한 기자에게 김정하 동강레포츠 사장은 인플레터블(Inflatable) 카약을 권했다. 인플레터블 카약은 하체를 배에 고정시키는 게 아니라 위에 올라타는 형태여서 굳이 스위프 롤 기술을 배울 필요가 없다.
형태는 카약이지만 고무보트여서 충격에 강하고 잘 뒤집어지지 않아 안전하다. 전통 카약처럼 길이가 3~4m로 길어 재주를 넘을 수는 없지만 카약으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이날 카약을 탈 코스는 강원 평창군 미탄면 절매나루에서 진탄나루까지 5㎞. 오대산에서 발원한 뒤 강원 영월군에서 서강을 만나 남한강 상류로 흘러드는 동강(65㎞)의 중심부다. 동강 줄기에서 잔 여울이 가장 많이 모여 있고, 수량이 안정적이어서 유량이 비교적 적은 봄가을에도 카약을 즐길 수 있다는 게 김 사장의 설명이다.
3m 길이의 1인승 카약에 몸을 싣자 서쪽으로는 산삼이 많이 난다는 접산(해발 823m), 동쪽으로는 정상의 바위가 곰처럼 생겼다는 곰봉(1,015m)이 눈에 들어온다. '절매 코스'로 불리는 이곳은 두 손으로 물을 뜨듯 접산과 곰봉이 굽이쳐 흐르는 동강을 감싸 쥔 모양이다.
가까이로는 양쪽 산에서 흘러내린 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산 중턱부터는 노란색으로 물든 잎사귀들이 단풍철의 시작을 알리느라 아우성이다. 보름만 지나도 산들은 화사한 붉은 옷을 갈아입을 터, 조금 일찍 온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출발합니다." 최승혜 강사의 지시에 따라 노를 저어 첫 번째 여울로 향했다.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른팔로 노를 저으면 왼쪽, 왼팔로 노를 저으면 오른쪽, 이렇게 삐뚤빼뚤 물결 무늬를 그렸다.
게다가 오른손잡이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 배는 자꾸 왼쪽으로 쏠렸다. 양팔의 젓는 힘이 비슷해야 하는데 오른팔의 힘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최 강사가 소리쳤다. "너무 세게 저으려고 하지 말고 배가 휘청거리지 않을 정도의 세기로 노의 날은 물에 다 담근다고 생각하고 저으세요."
첫 번째 여울 통과는 무난했다. 물이 흐르는 방향과 동일하게 배를 유지시키는 게 관건. 배가 옆으로 돌면서 물 흐르는 방향과 수직이 돼 배 옆구리로 큰 물살을 맞으면 뒤집히기 십상이다. 다소 유속이 빠른 여울을 통과했다는 성취감에 자신이 붙었다. 바로 두 번째 여울로 직행.
두 번째 여울은 양쪽에 1톤 트럭 크기의 바위가 있어 물살이 꽤 빠르다. 대신 바위 뒤에는 바위를 휘감는 소용돌이가 있어 배를 대고 쉴 수도 있다. 이런 곳을 에디(Eddy)라고 부른다. 잠시 노를 놓고 어깨라도 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배 앞머리를 바위에 스치듯 접근시키면서 45도 각도로 진입, 바위를 지나치는 순간 노를 세워 물에 꽂으면 배가 회전하면서 바위 뒤로 숨는다. 그러나 힘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겨우 물살이 잔잔한 곳에 들어오긴 했지만 바위 뒤에 밀착하듯 숨지는 못했다.
에디 안착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페리(Ferry)에 도전했다. 물을 건너는 기술이다. 급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건너기를 시도했다. 먼저 배 앞머리를 오른쪽으로 30도 가량 틀어 물살을 배 왼편으로 맞으면서 오른쪽 노를 저어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면 배는 신기하게도 오른쪽으로 옆 걸음을 치듯 나아갔다.
재미를 붙인 기자, 다시 왼쪽으로 건너갔다. 물살의 힘과 노를 젓는 힘이 균형을 이뤄 이동하는 게 여간 재미있지 않았다.
내친 김에 서핑(Surfing)까지 시도했다. 말 그대로 파도를 타는 기술이다. 급류를 정면으로 맞으면서 정지하듯 파도 위에 서 있는 것. 배가 기울 때만 노를 저어 평형을 유지한다. 노를 힘차게 저어 급류 중심에 들어갔다.
배가 약간 뒤로 밀리는 듯하더니 노를 젓지 않았는데도 멈춰 섰다. 배를 밀어내는 물살의 힘을 체중이 상쇄시켜 닻을 내린 듯 멈춘다는 게 신기를 따름이었다.
서핑을 즐기며 한 10초 간 머물렀을까 잠시 한 눈을 파는 동안 배가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노를 저어도 허사였다. 아뿔싸, 옆구리에 급류를 맞은 배가 휘청거리더니 뒤집어졌다. 구명조끼를 믿고 물에 큰 대(大)자로 누운 채 물살에 몸을 맡겼다.
노란 단풍과 푸른 하늘빛이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한가로움인가. 물에 빠진 동안 카약의 또 다른 매력에 흠뻑 젖어들었다.
평창= 허정헌기자
■ 래프팅보다 짜릿… 카약 어디 가서 배워볼까
카약을 타고 홀로 급류를 극복하는 재미는 래프팅보다 한층 더하다. 강사의 지시 없이 스스로 물길을 정찰하고, 페리(Ferryㆍ강 건너기)나 서핑(Surfingㆍ파도타기) 등 기술을 성공시켰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은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이륙했을 때의 기분과 견줄 만하다.
이런 이유로 래프팅을 두세 번하고 나서는 카약으로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현재 동호인은 1,000여명이다.
국내에서 카약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세 곳 정도에 불과하다. 대한레포츠협의회는 전문 강사 및 장비 보유, 보험 가입 여부 등을 고려해 강원 평창군 동강의 동강레포츠(www.raft.co.kr), 인제군 내린천의 청파카누학교(www.canoeschool.co.kr) 송강카누학교(www.kayak.co.kr) 를 추천했다.
교육은 1일 4시간, 3일을 기본으로 한다. 1일차에는 노 젓기와 장애물 통과 요령 등을, 2일차에는 페리 서핑 등 기본 기술과 이동 경로 설정을 위한 지형 정찰법 등을 배운다. 3일차는 반복 숙달 연습이다. 보통 3일 교육을 받으면 카약 투어링을 할 수 있다. 비용은 2인 교육을 기준으로 10만원 선이다.
기본 교육을 받은 후 각종 기술을 익숙하게 구사할 정도가 되면 급류카약에 도전해 볼 만하다. 뱃머리가 바닥을 향한 채 서는 기술과 재주 넘기 등을 배울 수 있다.
동강레포츠의 경우 급류카약 장비 대여료와 강습료를 합쳐 4시간 기준으로 4만5,000원을 받는다. 이 업체 김정하 사장은 "아무리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선체 파손, 조난 등 예기치 못한 위급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두 명 이상이 동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약 마니아의 세계로 들어서고자 한다면 자신의 체형에 맞는 장비를 구입하는 게 좋다. 급류카약 가격은 150만원, 전용 복장 상하의 40만원, 노 30만원, 헬멧 30만원, 구명조끼 30만원 등 총 300만원 정도면 필요한 장비를 모두 구입할 수 있다.
카약을 즐길 수 있는 기간은 연중 8개월 정도다.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10월 중순부터 얼음이 녹는 다음해 3월 중순께까지 겨울을 제외하고는 언제라도 즐길 수 있다.
다만 안전을 위해 시간당 30㎜ 이상 집중호우가 올 때는 절대 물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집중호우가 거의 없고, 물이 맑아 강 바닥까지 볼 수 있는 가을 카약은 여름과는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허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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