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성희 기자의 패션파일] 한복이 우울하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성희 기자의 패션파일] 한복이 우울하다

입력
2009.09.25 01:43
0 0

한복 업계가 올해 가장 썰렁한 추석 명절을 맞고 있다. 추석이면 으레 열렸던 한복 패션쇼 하나 없다. 유일하게 12일 서울시 주최로 열릴 예정이었던 한복 디자이너 그레타 리의 운현궁 전통 복식 패션쇼도 신종플루 전염 우려로 취소됐다.

한복 이벤트 기획자 박희수씨는 "불황이라 한복 맞춰 입는 사람도 드물고, 그나마 한복 수요가 많은 각종 지방자치단체 행사도 올해는 신종플루로 다 취소됐다"며 "이러다 한복 시장 자체가 고사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한복의 최대 수요처는 물론 웨딩 혼수다. 하지만 경기 불황의 그림자는 혼수 시장 중에서도 한복 시장에 가장 짙게 드리웠다. 업계지 '한복'의 김영선 편집장은 "경기가 좋을 때는 신랑 신부와 양가 어머님 등 최소 4명은 한복을 했기 때문에 평범한 중산층에서도 1,000만원 대 이상을 지출했지만 지난 연말부터는 이 돈이 100만~200만원대로 대폭 줄었다"며 "한복을 아예 생략하거나 대여하고, 맞춘다 해도 양가 어머님만 맞추는 추세"라고 했다.

값싼 대여 한복이 이용되는 것은 한복 수요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기도 한다. 김 편집장은 "혼례에서 한복 차림의 아름다운 자태를 봐야 나도 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 텐데 중국산 싸구려 한복만 판치니 누가 입고 싶겠나"고 안타까워했다.

한복은 한식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가 전통문화로 육성·지원하는 한스타일 종목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한식이 국내·외에서 한식박람회를 열고 김치 불고기 비빔밥에 이어 떡볶이까지 세계화 가능성을 활짝 연 반면, 한복은 국내에서조차 외면받고 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럭셔리 브랜드 가방은 팔려도 그 반값인 한복을 맞춰 입으려는 사람은 없다.

이유는 딱 한 가지, 입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집안에 혼사라도 있으면 모를까(요즘엔 외자녀가 많아 혼사도 줄었다) 기껏 명절 며칠 입자고 비싼 돈을 들이긴 아깝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오죽하면 서울대에도 의류학과에 서양 복식사 전공은 있어도 한국 복식 전공은 없다. 수요가 없으니 한복 업계의 발전도 요원하다.

한복 업계는 2006년 한국한복공업협동조합을 결성하고 묵은 한복 해외 보내기, 명절 한복 무료 수선 등 한복 입기 생활화 계획을 밝혔지만 현재 흐지부지된 상태다.

그런데 이웃나라 일본은 좀 다르다. 일본의 전통 복식 기모노는 원화로 환산하면 한 벌에 보통 1,000만원 대를 넘어가지만 혼수 필수품이며 전통문화로서 최고의 예우를 받는다. 외국에서 국빈들이 오면 기모노조합에서 일본 특유의 화려한 예식을 거쳐 기모노가 증정되고 입는 방법이 시연된다. 젊은이들은 성인식에서 기모노 착용을 당연시한다.

국내에서는 한복이 백화점 매장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만 일본 최고급 백화점들인 미츠코시 니혼바시점이나 이세탄 신주쿠점 등은 여전히 호사스러운 기모노와 기모노 원단, 각종 장신구 등을 파는 전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 패션계에 '기모노 슬리브'(기모노 형태로 폭이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소매)나 '오비 벨트'(기모노의 허리띠) 등 고유명사를 탄생시킬 만큼 일본 전통 복식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모두 일본 내 기모노 전통이 확고히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문화가 자원이 되는 시대다. 국가 경쟁력 강화에서 문화 산업의 중요성이 줄기차게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도 한복은 가장 대표적인 전통문화이면서 일반의 인식 부족, 업계의 이슈화 노력 미흡,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 부재로 잊혀져 가고 있다. 의식주(衣食住)중 의를 제일 앞에 둘 만큼 복식 문화를 중시했던 선조들이 애통해 할 일이다.

summ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